독도문서자료실로 이동

원록구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원문사진과 국역본은 손승철 강원대학교 교수의 '1696년 安龍福의 제2차 渡日 공술자료(한일관계사 자료집 24집 pp.251~300, 2006년 4.30. 경인문화사)'에서 발췌했으며, 동자료에서의 주기 사항을 일부 실었습니다. 이 자료를 사용하실 때는 꼭 위 자료집의 이름과 저자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의 한자가 심하게 흘려 써 있어 원문상 한자를 다르게 해독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래는 반월성통신님의 홈에 올려 진 원문과 다케시마 연구회에서 올린 원문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pdf파일, 아래 링크를 클릭)

반월성통신

다케시마 연구회

※ 이미지는 클릭하면 확대



 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隱岐國嶋後

길이 上 3丈1) 2丈 
一. 조선 배 1척, 폭이 上1장 2척이고, 깊이는 4척 2촌이다. 단 80石을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돛대 2개,돛 2개, 키 1개, 노 5정, 목면 깃발을 두 개를 세웠다.
나무닻 2정, 닥나무 4묶음, 돗자리 깔개, 개의 가죽


1)上口; 배위 갑판의 길이를 말함. 下口 ; 배 바닥의 길이를 말함.


一. 배에 탄 사람 11인
俗人 安龍福, 俗人 李裨元, 俗人 金可果, 俗人 3인은 이름과 나이를 쓰지 않았다.
승려 雷憲, 승려 衍習(뇌헌의 제자), 승려 3인은 이름을 쓰지 않음.

一. 安龍福(アンヘンチウ2)), 43세.
冠 같은 검은 갓을 썼고, 수정이 달린 줄, 얇은 목면 상의를 입었습니다.
허리에 패를 하나 찼는데, 겉에 通政大夫 安龍福 甲午生, 東萊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도장과 작은 상자와 귀이개를 넣은 작은 상자가 달린 부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一. 金可果3), 나이를 쓰지 않음.
冠 같은 검은 갓을 썼고, 목면으로 끈을 달았고, 흰 면의 상의를 입고, 부채를 들었습니다.


2)변장(邊將); 조선시대 劍使·萬戶·權管 등을 통틀어 이르던 말.

3)가과(可果) ; 원래 관직을 가리키는 司果가 잘못 서술된 것임. 司果는 조선시대 五衛에 속한 정5품의 무관직 다음의 벼슬로 待機文官에게 봉록만을 급여하기 위하여 임명하는 직무 없는 관직이다. 현직에 있지 않은 文武官·蔭官 중에서 임명하였다.


一. 승려
흥왕사 주지 뇌헌 55세
관 비슷한 검은 삿갓을 썼고, 목면으로 끈을 달았습니다.
가늘고 아름다운 실로 짠 상의를 입고 부채를 들었습니다.
기사4) 윤3월 18일 금오산의 주인장을 뇌헌이 가지고 있다가 내놓자, 곧바로 베껴두었습니다.
강희 28년5) 윤3월 20일 금오산 朱印이 찍힌 문서를 뇌헌이 가지고 있다가 내 보인 즉 곧바로 베껴 두었습니다. 상자 하나가 길이 1척, 폭 4촌, 높이 4촌이고, (방울)자물쇠가 걸렸는데, 그 안에 대나무로 만든 算木6), 벼루와 필묵이 있었습니다.

뇌헌제자
一. 승려 연습, 나이 33세라고 합니다.

一. 위의 안용복, 뇌헌, 김가과 3인을 在番人이 입회했을 때, 소지했던 8매로 한 조선팔도지도를 내보이며, 팔도의 이름을 조선말로 썼다. 3인 가운데 안용복을 通詞로 하여 사정을 문답했습니다.
一. 배에 짐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干鮑7) 조금, 미역 조금이 있는데, 이것은 식사 때에 쓰는 것이라 했습니다. 뒤에 배 가운데(있는 물건)의 목록이 별도로 있습니다.


4)己巳 : 1689년 숙종 15년, 元祿 2년.
5)康熙 28년 ; 1689년 기사년과 같음.
6)算木(산목, さんぎ) ; 점칠 때, 또는 셈할 때 쓰는 산가지.
7)干鮑 ; 말린 전복


一. 배에 승려 5인이 탄 일을 물었더니, 竹嶋에 구경을 가기 위해 동행했다고 합니다.

一 승려의 宗派가 5인이 한 종파인가, 다른 종파인가, 무슨 종파인가를 물으니, 뇌헌이 그 물음에 답을 썼는데, 그 내용이 불분명하여, 다음날인 21일에 그 종파의 이름을 伯州에 보냈고, 짐 목록 등과 病者 李裨元의 일을 함께 써 보냈습니다.

一 안용복이 말하기를 竹嶋를 대나무섬이라고 하며, 조선국 강원도 동래부내의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것을 대나무섬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팔도의 지도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一 松嶋는 같은 강원도 내의 子山이라는 섬입니다. 이것을 松嶋라고 한다는데 이것도 팔도의 지도에 쓰여 있습니다.

一 당자 3월 18일 조선국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배를 타고 떠나서, 그날 저녁 죽도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었다고 합니다.


一. 배 13척에 사람은 1척에 9인, 10인, 11인, 12~3인, 15인 정도씩 타고 죽도까지 갔는데, 사람 수를 물으니 전혀 답하지 못했습니다.

一 오른편 13척 가운데 12척은 죽도에 미역과 전복을 따고, 대나무를 벌채하러 간 것인데, 올해는 전복도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一 안용복의 말에 의하면, 우리 배의 11인은 伯州를 거쳐 島取 伯耆守에게 담판을 지으려고, 순풍을 타고 이곳에 와서 차차 伯州로 도해하려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5월 15일 竹嶋를 출선하여 동일 松嶋에 도착했고, 동 16일 松嶋를 떠나 18일 아침에 隱岐의 西村 해안에 도착, 동 20일 大久村 나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西村의 해안은 거친 해안이어서, 동일 中村의 나루로 들어갔는데, 다음날인 19일에 떠나 동일 저녁 大久村안의 가요이浦라는 곳에 배를 묶어두고, 20일에 大久村으로 갔다고 합니다.


一. 竹嶋와 조선 사이는 30리,  竹嶋와 松嶋 사이는 50리라고 합니다.

一. 안용복과 토리베8) 2인은 4년 전 여름에 竹嶋에서 伯州의 배로 끌려 왔는데, 토리베는 이번에 데리고 오지 않고 竹嶋에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一. 조선에서 출선할 때, 쌀 5말 3되를 열 부대에 넣어, 13척에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飯米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一. 伯州에서 일을 본 후, 竹嶋로 돌아와 12척의 배에 짐을 싣고, 다시 6~7월에 伯州로 돌아와, 殿(伯耆守)에게 運上9)을 바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一 .竹嶋는 강원도 동래부에 속해 있고, 조선국왕의 어명을 받는 東萊府殿의 이름은 一道方伯으로, 竹嶋를 지배하는 사람의 이름은 동래부사라고 합니다.


8)とりべ(토리베) ; 박어둔
9)運上 ; 일본 중세에 供物을 京都에 운반하여 바치는 일을 말한다.


一. 4년 이전, 계유10) 11월 일본에서 주신 물건과 함께 書付11)1책을 내 놓았습니다. 즉시 이것을 베꼈습니다.

一 3인과 在番人의 대담이 끝나고, 3인이 배에 함께 돌아간 후에 서한과 함께 마른전복 6포 중 1포는 大久村 庄屋12)에게, 5포는 在番人에게 정성스럽게 보내왔지만,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그 서한의 말미에는 과일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상추, 과실, 생강 등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서한의 답장도 보냈습니다.

一 21일 안용복으로부터 문서로 飯米가 떨어져 夕食부터 먹을 수 없다고 하여, 배에 庄屋 與頭 右衛門을 보내어 조사해 보니, 飯米가 없어 난감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타국의 배가 찾아오면, 음식을 대접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10)癸酉 ; 1693, 元祿 6년.
11)書付 ; 문서 또는 증서.
12)庄屋(しょうや) ; 江戶시대에 마을의 정사를 보는 사람. 村長.


庄屋이 말하기를, 이곳에서도 다른 나라의 배가 바람을 피해 오면 飯米등 필요한 것을 조사해서 주지만, 이번에 온 것은 그쪽에서 島取의 伯耆守님에게 소송을 하기 위해 온 것이므로, 飯米등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이상합니다. 竹嶋를 15일에 떠나 그대로 일본 땅에 도착하였고, 일본 땅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앞에 말씀드린 대로 초조하였습니다.
배 가운데를 조사하였더니, 飯米가 삼 홉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반미가 떨어져서 여기서는 밥을 지어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在番所에 갈 때까지는 大久村 평민에게서13) 받은 백미 4되 5홉을 주었습니다. 조선 되로 1말 1되 5홉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在番에서 쌀을 주었는데 백미 1말 2되 3홉을 주었는데, 조선 되로 합이 3말입니다. 두 번째의 쌀은 21일 저녁에, 22일에는 세 번째 飯米를 주었다고 합니다.


13)地下(じげ);①地下人의 준말. 궁중에 봉사하지 않는 사람. 즉 평민, 일반백성. ②영토 안의 토착민.


一. 11인 가운데 이름과 나이를 알지 못하며 그 외에도 또 종파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그대로 伯州에 소송하는 문서를 제출한다고 합니다.
22일 아침에 이르러서도 그 사실을 써 내지 못하였으므로, 百州에 가는 사유를 거듭하여 자세히 물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뇌헌이 22일 상륙했을 때에 입고 있었던 것은
一. 상의는 흰 목면의 ○을 입고 있었습니다.

一. 모자는 일본의 선종의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옷감은 엉성하게 짠 마포, 옷깃 안쪽은 흰 삼베



一. 염주도 선종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알이 수십 개였고 갓은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자 연습도 입고 있는 옷은 뇌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연습의 염주는 알의 크기는 같았으나, 수는 더 많았습니다.

一. 22일에 안용복, 이비원, 뇌헌과 그의 제자가 육지에 올라 온 것은 서풍이 강하게 불어 배안에서는 글씨를 쓸 수 없어서 육지에 올라가 쓰게 된 것이고, 해변 근처의 백성의 집에서 문서를 써서 제출하였습니다.


21일에 배에서 쓴 문서와 이번에 올린 소송 1권과 그동안의 경위를 적은 것입니다. 22일부터 육지에 올라와 상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의 문서와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여기에 적어 놓았습니다.

一. 21일부터 23일까지도 바람과 비가 강해서, 西鄕으로 조선배를 돌렸으나, 배를 끌어 올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배를 보내어 役人과 함께 大久村에 끌어다 두었습니다. 18일부터 서풍이 매일 강하게 불어 뱃길의 통행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一. 石州에 탄원하기 위해 松岡弥二朗을 도해시켰는데, 22일에 弥次右衛門이 돌아와서, 高梨 衛門, 河嶋理大夫를 오오쿠무라(大久村)로 보내어 飯米 등을 가까운 시일에 庄屋을 통해서 건네게 하니, 조선인이 기뻐하면서 문서를 보내와 즉시 올려 보냈습니다.
  이번에 朝鮮仁一卷의 문서와 조선인이 제출한 문서목록을 써서 弥次右衛門이 지참하여 올리도록 했습니다. 이상.

中賴彈右衛門
5월 23일
石州 山本淸右衛門
御用所 
 

朝鮮舟在之道具之覺

一. 흰쌀(白米) 3홉 정도 남아있습니다.
一. 미역(和布) 3표
一. 소금(鹽) 1표
一. 전복(干鰒) 1자루
一. 장작(薪) 한 꾸러미, 길이 6척 8촌, 둘레 1척.
一. 대(竹)  6그루, 길이 3척 5촌, 둘레 3척.
一. 칼(刀) 1개, 이 칼은 무기로 쓰지 못한다. 조잡한 칼이다.
一. 호신용칼(脇指) 1腰, 이 호신용 칼이라 해도, 요리에 사용하므로 식칼과 같다.
一. 창()4개. 모두 전복을 잡는 데 쓰는 것이라 한다. 긴 것은 4척 정도.
一. 긴칼(長刀) 1개
一. 작은 활(半弓) 1개
一. 화살 1상자
一. 돛대(帆柱) 2개, 그중 하나는 8발. 하나는 6발. 그중 하나는 대나무로 만듦.
一. 돛(帆) 2개, 하나는 5장에서 6장, 하나는 4장에서 5장.
一. 키(梶) 1개, 1장  4척 5촌.
一. 짚으로 만든 발(王網)
一. 지붕10매(그중 2매의 길이는 5척, 폭 1장 2척, 나머지는 일본 것보다 조금 크다)
一. 개가죽(견피) 3매.

위와 같이 조사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조선인속명

이비원(이비장) 김가과(김사과)
유상공(유사공) 김감관(김간관)
유가이 이자는 물어 보았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안용복과 함께 6인의 속인
승명
흥왕사(흥?) 뇌헌(도이헌)
영률(영육) 단책(단소이)
등담(수?) 연습(엔수)
               뇌헌제자

위 5인 승려
합 11인


朝鮮之八道

경기도
강원도 이 도 가운데 竹嶋 松嶋가 있다.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경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