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지지(大韓地誌)의 영토범위

대한지지(廣文社, 玄采, 1899)의 대한전도와
한반도의 경계를 서술한 대한지지 제 1편 총론 제1과 위치 폭원(幅員) 해안

 1899년 대한지지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대한전도이다. 일본측에서는 이 지도의 于山이 현재 죽도(竹島)의 위치에 존재한다 하여, 한국의 고문헌에 등장하는 于山은 죽도(竹島)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大韓地誌에서 한반도의 경계를 북위(北緯) 33도 15분 ~ 42도 25분까지로, 동경 124도 30분~130도 35분까지 로 표시해[ ]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에서 제외시킨 것처럼 기록되어 있어, 일본측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부정하는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한제국에서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독도의 정확한 동도(東島)의 東經은 독도 삼각점 기준으로 131도 52분 07초 이다.(건설교통부 자료)

그럼, 일본측 주장이 타당한지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자.

. 대한지지의 저자 현채(玄采)의 발문(跋文)을 보자. (※1899년 대한지지의 발문 사진을 구하지 못해 1900년 발간된 대한지지의 발문을 올립니다. 내용은 차이가 없습니다.) 책머리에 학부편집국장 이규환(李圭桓)의 서(序)와 범례 ·목록이 있고, 책말미에는 편자인 현채(玄采)의 발(跋)이 있다.

 현채의 발(跋)을 보면, 가장 첫머리에 "余所編 地誌本諸日人所記參諸輿地勝覽" "내가 편찬한 지지본(地誌本)은 여러 일본인의 기록과 동국여지승람을 참조했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러면, 한반도의 경계를 서술한 위의 경위도 표시는 일본의 어느 기록을 참고한 것일까?

1894년 발간된 일본의 조선수로지 총기(總記)를 보자.
 

朝鮮國ハ 亞細亞ノ 東部ニアリ 其地勢タル 狹長ナル  一大半島ヲ 成シ 數多ノ 島嶼之ヲ繞圍 ス其位置ハ 北緯三三度一五分 ヨリ同四二度五分東經一二四度三○分ヨリ 同一三○度三五分ニ 至ル

조선국은 아시아의 동부에 있다, 그 지세는 좁고 길게 이루어져 있으며, 일대반도를 이루는 다수의 도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 위치는 북위 33도 15분에서 동 42도 25분, 동경 124도 30분에서 동 130도 35분에 이른다.

 대한지지의 경위도 표시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한지지의 제1편 총론(總論)은 일본의 조선수로지 제1편 총기(總記)를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한지지의 한반도 경계는 '조선수로지'를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이다. 1894년, 1899년,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에서는 총기(總記) 에서는 조선 영토의 경계를 "東經 124도 30분~130도 35분까지 "로 명기하면서, 리앙꼬루도 열암(リアンコ-ルト列岩, 독도)의 東經을 131도 55분 으로 표시 하였다.

 그럼, '현채'가 참고한 조선수로지에서 독도의 동경이 조선의 경계를 벗어나 있으니, 일본은 독도를 조선영토에서 제외시켰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환영수로지(1883년)와 1894~1945년 6월 조선연안 간이수로지(朝鮮沿岸 簡易水路誌)에 이르기 까지, 일본 해군성은 독도를 "리앙꼬르도 열암(リアンコ-ルト列岩)"이라는 이름으로 환영수로지에서는 조선동안(朝鮮東岸)편에 수록하였고, 1894년 이후에는 조선수로지에 독도를 포함시켰다.

일본은 이 수로지(1894, 99년)의 총기(總記)를 쓸 때, 영국 해군성의 수로지인 'China Sea Directory 제4권, 제3'을 참고하여 거의 영문을 일본어로 번역해 옮겨 놓다 시피 하였으며, 이 내용을 대한제국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다시 대한제국의 교과서에 실어 놓은 것이다.

※1일본의 1886년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는 1884년 발행된 'China Sea Directory 제4권 제2판' 내용을 참고하였으며, 그밖에 일본 해군의 조사보고서, 우리 나라 지명(地名)에 관해서는 조선팔역지(朝鮮八域誌)가 참고되었다. 1894년 11월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역시, 총기(總記) 는 'China Sea Directory 제4권, 제3'을 일본어로 번역해 놓았으며, 그밖의 내용은 일본해군의 보고서와 1894년판 영국에서 발행한 수로지와 1894년 10월까지의 수로고시 등을 가지고 개정 증보했다.
※2 대한지지의 총론에서는 한반도의 동경을 설명하면서, 그 밑에 "英國錄 威司天臺(위사천대)랄 據함이라".('아래 아'는 'ㅏ'로 표기)라는 주기를 달아 이 기록에서 동경표식이 영국측 기록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필자가 보기에 '현채'는 영국의 기록이 수록된 일본수로지와 같은 일본측 기록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발(跋)에서 현채가 밝힌 바에 의하면, 대한지지의 모든 기록은 일본과 동국여지승람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威司天臺가 어떤 책인지는 ?)

 아래의 신찬조선지리지(新撰朝鮮地理誌,1894.10, 太田才次郎 編, 博文館 그림 왼쪽)와 조선지리도(朝鮮地理圖, 1894, 6, 鈴木留吉 그림 오른쪽)에서의 한국영토의 경위도 표시는 조선수로지와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서적들은 조선수로지의 경위도 표식을 그대로 인용했거나 같은 영국의 지리서를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자료;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1899년 발간된 대한지지는 조선수로지를 비롯해 많은 일본의 지리서를 참조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위의 '조선지리도'의 기록을 많은 부분 참조한 것(대한지지 앞부분의 내용은 조선지리도의 해석본에 가깝다.)으로 보인다.
참고로 조선지리도에서는 당시 대한제국의 인구수를 930만 2천 4백여 명으로 적고 있다. 현재 인구수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다.

위의 오타 사이지로(太田才次郎)의 신찬조선지리지(新撰朝鮮地理誌, 1894) 186페이지를 보자.
 

 강원도의 도서를 설명하면서 "其他草島, 城島, 柹, 竹島, 鬱陵島, 于山島ハ共ニ東海ノ中ニ散布セル諸島ナリ
(기타 초도, 성도, 시도, 죽도, 울릉도, 우산도는 모두 동해 중에 산재해 있는 있는 제도(諸島)이다.)"

신찬조선지리지에서 역시 한반도의 동쪽 경계의 끝을 울릉도의 경위도로 기술하면서도 울릉도 이외 우산도(于山島)를 강원도에 속하는 섬으로 기록해 놓았다.

 울릉도까지만의 경위도로 한반도의 경계를 표시하면서 리앙꼬루島(독도)를 한국의 강원도에 속한 섬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사례가 '한해통어지침'이며, 그 외에도 최신 조선사정 등 모든 일본 측 서적에 이와 같은 사례가 발견된다. 이로 보아 이때의 한국 극동의 경위도 표식은 울릉도까지만의 표기이며, 실제로는 일본에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식했음은 분명하다.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흑룡회, 葛生修亮 저, 1903)

최신 한국실업지침(最新 韓國實業持針, 岩永重華 저, 寶文館, 1904)

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 田淵 저, 1905.9월) 최신 조선지지(最新 朝鮮地誌, 日韓書房編輯部 편, 日韓書房 1912)


한해통어지침 '제3장 연해지리(沿海地理) (一)槪勢 位置 區劃 地勢 山岳 河川 島 標 人口 風俗 産物 海勢' 항에서는 한국의 경계를 표시하면서 북위 33도15분~42도 25분, 동경 124도 30분~130도 35분 사이에 위치한다고 기록했다. 한국의 극동(極東)을 울릉도의 경위도로 표시했으나, 리앙꼬루島를 한국의 강원도에 속한 섬으로 묘사했다.{제3장 연해지리 (四)江原島 鬱陵島(
ヤンコ)} 이곳을 클릭

최신 한국실업지침에서도 제1장 총설(總說) 제1절 지리(地理)항에서 북위 33도 15분~42도 25분, 동경 124도 30분~130도 35분까지로 기록했으나 이 책 역시 ヤンコ島(양꼬島)를 한국의 강원도에 속하는 섬으로 묘사했다.
이곳을 클릭

한해통어지침과 최신 한국실업지침의 한반도 경계를 표시한 경위도 역시 조선수로지와 일치한다.

한국신지리 제1편(編) 지문지리(地文地理) 제2장 위치(位置)에서는 극동을 러시아 국경 두만강 입구로 규정하여 동경 130도 58분으로 기록해, 독도가 조선영토의 밖인 것처럼 기술하였으나, 이 책에는 ヤンコ(양꼬)島를 한국영토에 포함시킨 한국전도를 수록하였고, 이 책 제3편 처지(處誌) 제5장 '강원도'에 속한 섬으로써 ヤンコ(양꼬)島를 기술하였다. 아래 이어서 설명. 이곳을 클릭

최신 조선지지 '제1편 자연지리 제2장 위치'항에서는 한국의 극동(極東)은 울릉도 동단(東端) 동경 130도 54분, 극서(極西)는 압록강 신도(薪島)의 서단 동경 124도 13분, 극남(極南)은 제주도의 남단 북위 33도 12분, 극북(極北)은 함경북도의 북단 북위 42도 2분으로 기록해 최극단을 표시할 때, 섬의 경우에 있어서 주도(主島)의 경위도만을 표시하고 부속 섬의 경위도는 제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역시 독도를 리앙꼬島(ロツク·リアンコルド)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도서에 속해 있는 섬임을 밝혔다. 이곳을 클릭
 

.1899년 첫 발행된 大韓地誌의 속편인 대한신지지(大韓新地誌)를 살펴 보자.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1907, 張志淵, 微文館)
 


대한제국의 영토 범위를 북위 33도 46분~43도 2분 
동경 125도 5분~1
30도 58분 으로 표기하고 있다.

현성운(玄聖運)이 제작한 大韓新地志 附 地圖이다. 于山은 물론 울릉도까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41쪽에서 43쪽까지를 보자.
 

대한신지지 2권 경상북도편 44페이지에는 울릉도의 속도(屬島)로 우산도(于山島)가 소개되어 있으며, "우산도는 그 (울릉도) 동남쪽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이 기록은 우산도가 댓섬인 '竹島'나 '관음도'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며, 한반도의 경계를 표시한 경위도 표시로 인해, 대한제국이 독도를 영토 범위 밖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럼, 대한신지지는 일본의 어느 지리서를 참고해 대한제국의 영토범위를 표기했을까?

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 1905)

 1905년 박문관
(博文館) 에서 발간한 한국신지리를 보자. '대한신지지'의 경위도표시와 일치한다. 대한신지지의 제2장 '위치편'은 한국신지리를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해 놓은 번역문임을 알 수 있다. 분류 항목까지 서로 똑같으며,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한국신지리를 번역해 놓았다. 


한국신지리 第一編 地文地理  第二章 位置 (2page) 편

한국신지리는 당시 대한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던 일본의 지리서로서, 장지연은 이 책의 경위도 정보를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제국은 독도에 대한 정확한 경위도를 파악하지 못해 일본지리서의 기록을 참조했을 뿐이며, 울릉도 동남쪽에 우산도가 있음을 명기함으로써,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서의 대한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밑에 소개하는 초등 대한지지 역시, 대한제국의 범위를 규정한 경위도에 대한 기록이 대한신지지와 일치하고 있다. 더군다나, 대한제국의 교과서가 참조(번역)한 한국신지리에는 독도를 ‘리앙꼬르드島(リヤンコールド)岩'이라는 명칭으로 대한제국의 영토에 포함시킨 한국전도(韓國全島)를 전면에 싣고 있으며, 이 책, 제3편 처지(處誌) 제5장 '강원도'편에서는'ヤンコ(얀꼬)島'라는 명칭으로 울릉도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곳을 클릭

한국신지리 '위치'편의 내용을 살펴보자. 대한신지지의 '위치'편은 한국신지리 '위치'편의 번역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第二章 位置

韓國は 亞細亞州の 東部にありて、 支那大陸の 東南端より南方に 突出したる 狹長なる 半島國にして、 其極南の地は 濟州島の 毛瑟浦とし北緯 三十三度 四十六分(佐世保)に 當り 極南は 全羅道 達陸角とし 北緯 三十四度 五十五分に 當る。 其極北の 地は 豆滿江(圖們江) 沿岸の永遠近傍にして 北緯 四十三度 二分(札幌)とし 極西は 黃海道 小乳縣角にして  東經 百二十五度 五分(八重山群島)とし、 極東は 露 國 境なる 豆滿口にして 東經 百三十度 五十八分(九州東端)に居る。 故に全國は 其全域北溫帶中にあるものてす 。

我國의 位置난 亞細亞州의 東部에 在하니 支那大陸의 東北部로부터 渤海와 黃海와 日本海의 間에 突出하여 橢長한 半島國이라. 其極南의 地난 濟州島의 毛瑟浦니 北緯(북위) 三十三度 四十六分에 當하며 又 全羅道 荒島의 西南 達陸角은 北緯 三十四度 五十五分에 當하고, 其極北의 地난 豆滿江 沿岸의 慶源이니 北緯 四十三度 二分이오 極西난 黃海道 長山串이니  東經 百二十五度 五分이오 極東은 ※1) 俄國 接境의 豆滿江口니 東經 百三十度 五十八分이라 全國이 北溫帶의 中에 在하니라.
(
※ '아래아'는 'ㅏ'로 표기, ※1) 俄는 我의 오기 )

우리나라의 위치는 아시아주의 동부에 위치하니 중국대륙의 동북부로부터 발해와 황해와 동해 사이에 돌출한 길쭉한 반도국이라. 그 남쪽 땅끝은 제주도의 모슬포(毛瑟浦)이니 북위 33도 46분에 이르며 또, 전라도 황도(荒島)의 서남쪽 달육각(達陸角)은 북위 34도 55분에 달하고, 그 북쪽 땅끝은 두만강 연안의 경원(慶源)이니 북위 43도 2분이오 서쪽 땅끝은 황해도 장산곶(長山串)이니 동경 125도 5분이오, 동쪽 땅끝은 우리나라 접경의 두만강구이니 동경 130도 58분이라 전국이 북온대 사이에 위치하니라.

대한신지지 건,(大韓新地志 乾, 坤, 1908년, 張志淵, 廣學書館)

1907년
장지연(張志淵)이 저술한 대한신지지는 당시 한국 지리책 중 비교적 과학적으로 내용을 구성한 지리교과서로, 1907년 6월 15일에 초판을 발행한 후 1년 6개월 만에 재판을 발행할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 1908년 재판된 대한신지지에서 역시 坤43p에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于山島는 其東南 에 在하니라."라고 적고 있다.

장지연의 대한신지지는 대한제국의 대표적 지리교과서로서, 대한제국이 독도인 于山島를 확실하게 그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C. 초등 대한지지(安鍾和, 1907년)

1907년 초등 대한지지에서는 한반도의 경계를 북위 33도 13분 ~ 43도 2분까지, 동경을 125도 5분 ~ 130도 58분까지로 표시하고 있으며, 특히 대한제국의 동쪽 끝을 경상북도 울도군 울릉도로 표기하여, 마치 독도를 영토범위밖으로 여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제12課 都會勝地), 28p에서는 鬱島(울릉도)를 소개하고 있으며, 29페이지를 보면,  "우산도(于山島)는 그(울릉도) 동남에 在하니라." 라고 하여, 우산도가 독도의 부속섬임을 밝히고,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표기하고 있다.

초등 대한지지 역시 동경의 범위는 1905년 발간된 한국신지리와 일치한다, 한국신지리의 남쪽 경계 위도가 33도 46분에서 33도 13분으로 대체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이 교과서 역시 일본의 지리서를 번역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1908년 초등 대한지지(安鍾和, 柳瑾 共著)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기술을 보이고 있다.
 

결어

19세기 서양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가상의 섬 'Argonaut'를 오인해 표기 해 놓는 등, 그 지리적 위치에 대한 정보는 정확하지 못했다. 이를 일본이 그대로 자신들의 지리서에 번역해 옮겨 놓았고, 근대적 지리정보에 무지한 대한제국이 다시 한번, 일본의 지리서를 번역해 사용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교과서와 이 교과서가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지리서에서는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범위밖으로 표시하는 경위도 표식을 하면서도 '于山島', ‘리앙꼬르도(リヤンコールド)岩'라는 명칭으로 울릉도의 속도로 독도를 표기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아, 대한제국 당시 한일의 대한제국에 대한 경위도 표식은 서양의 지리서에 근거한 형식적인 표기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독도를 한일 모두 대한제국의 영토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울릉도까지만의 한반도 경위도 표식을 했다.

대한지지에서는 거의 모두 대한제국의 영토범위를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 지리서의 기록이 모두 제각각이었기에 일본의 어떤 지리서를 참조했느냐에 따라, 그 경위도 표기가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의 교과서인 대한지지에서는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그 동남쪽에 독도인 우산도를 언급함으로써, 대한제국이 독도를 확실하게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울릉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부속섬은 독도(于山島)이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지지는 독도를 그 영토범위에서 제외시킨 증거가 아니라 우산도(于山島)가 현재의 '독도'임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은 울릉도까지 만으로 한정해 동단을 표시한 형식적인 경위도 표식을 했으나, 모두 우산도, 리앙꼬루島(양꼬島)라는 이름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기록하였다.

일본에서는 현재 이런 전체적인 진실상을 외면하고 대한지지의 경위도 표식을 그 예로 들어 대한제국 정부가 독도를 자신의 영토범위 밖으로 여겼다는 왜곡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모든 기록에서는 한국의 극남을 제주도까지로 한정해 그 밑의 '마라도'등의 섬은 제외하고 있다. 이것은 이 경위도 표식에 제주도나 울릉도에 속한 부속섬은 포함시키지 않은 형식적인 경위도 표식이었음을 증명한다고 할 것이다.

대한지지 및 일본 지리서의 이러한 관행은 그후 최남선의 대한상식문답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최남선 역시 이런 이전의 관행을 그대로 따라 한반도의 극동을 울릉도로 한정해 표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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