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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지도와 문헌 속 우산도 위치의 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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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1417년부터 울릉도 공도 정책을 시행하여 울릉도에 직접 거주했던 울릉도민, 울릉도에 직접 관계한 강원도의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우산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도제작자가 이전 지도에서 울릉도의 동서남북 4방에 표시되어 있는 우산도를 울릉도 북동쪽의 죽도(댓섬)로 착각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30~40일 정도이며,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게 목격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날씨가 좋지 않다면, 사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울릉도 북동쪽의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혼동이 분명하게 보이는 대표적인 지도가 광여도이다. 광여도는 해동지도와 유사한 18세기 군현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집이다.
이 지도에서는 "所謂于山島"라는 표기와 함께 현재 죽도의 위치에 우산도를 그려 놓았다. 명백하게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한 경우이다. 아래 지도는 이 광여도와 거의 유사한 '여지도' 울릉도 부분의 지도이다. 대부분의 주기는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호구 통계 등을 제외하면 형식은 다르나 내용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시기적으로 광여도보다 약간 이른 것으로 추정되므로, 광여도가 이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사용된 기호에 일관성이 없거나 위치가 바뀌는 일도 자주 나타나고 있어, 광여도는
상당부분 이 지도집의 잘못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19세기 전반) 울릉도 부분. 역시 우산도를 현재의 죽도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조선후기, 대부분의 한국 고지도에서 우산도의 위치가 바로 잡혀 있음에도, 여전히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일개 무인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뚜렷하지 못했음은 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선조는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서 꾸준히 우산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해 왔다. 대한제국이 울릉도를 개척할 초기, 울릉도 검찰사였던, 이규원 역시 검찰을 떠나기 전, 고종황제와 나눈 대화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전혀 없었음을 증명해 주는 내용이 고종실록에 등장한다. 서울의 중앙관료들은 우산도라는 섬이 울릉도 근처에 있었음을 인지했지만, 오랜 울릉도 공도 정책으로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접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규원 역시 울릉도 검찰을 다녀온 후, 울릉도와 독도, 죽도, 관음도에 대한 한국·일본 측 명칭 및 위치를 확인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울릉도민들은 명확하게 우산도(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우산도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가리키고 있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한가지 더 우리는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위와 같은 지도를 통해 한국 지도 속 우산도는
죽도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위 지도에서 우산도는 울릉도에
거의 붙어 있다 시피할 정도로 근접해 그려져 있으며, 울릉도에 비해
그 크기가 작다. 울릉도에서 항상 보이는 섬이기에 그 위치나 크기를
혼동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국 지도 속에 등장하는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쪽, 혹은 그 밑에 크기가 과장되어 그려져 있는 지도가 가장 많다. 이러한
우산도표기 한국의 고지도는 우산도를 울릉도와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현재의 독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죽도(Jukdo)는
거리상 울릉도 바로 옆에 근접한 섬으로써 울릉도 이외에 따로
전도(全圖)에까지 표기할 만한 섬이 아닌 것이다.
대한전도와 대한여지도를 보자.
분명, 우산도는 현재 죽도의 위치에 있다. 당시 지도의 부정확성을 고려한다 해도, 필자가 보기에 위 지도에서의 우산도는 댓섬인 죽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이전 조선의 지도에서 위 두 지도와 같이 표기된 지도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우산도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이전 지도를 참조해 우산도를 울릉도의 북동쪽에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사 속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인 것은 틀림없으나, 두 지도에서는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이 광여도나 박석창이 그린 '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1711)'에서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한 몇몇 지도와 마찬가지로 울릉도 밑에 존재하지도 않는 5개의 섬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한전도와 대한여지도는 이전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지도를 참조했음이 보이고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독도를 지칭하던 '우산도'를 우리의 영토에 포함하여 그 영유의식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13일 자를 보면, "登高遠眺 則千里可窺 而更無一拳石一撮土 則于山之稱鬱陵 卽如耽羅之稱濟州是白如乎" "청명한 날에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살펴본즉 일천 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또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었으니 이는 곧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 말은 제주도의 옛 명칭인 탐라(耽羅)를 제주도라고 칭하듯이 울릉도의 옛 명칭인 于山(國)을 울릉도라고 칭하는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규원 자신도 울릉도를 우산도(芋山島)로 알고 있었으며, 이 오류가 울릉도에 직접 방문하고 나서야 시정된다. 이런, 오류는 몇 곳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청구도 지도제작자의 주기 1834년에 제작된 김정호 선생님의 '청구도'에는 다음과 같은 지도제작자의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英宗十一年 江原監使趙最壽 啓言 鬱陵島地廣土沃有人居間地 而又有于山島 亦廣闊云卽 所謂西字與 此圖之在東相佐" (※간체자나 이체자는 모두 정자로 표기함.) “영조 11년(1735)에 강원도 감사 조최수(趙最壽)가 장계를 올려 말하기를 울릉도를 조사하여 보니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쪽에 또 우산도가 있는데, 역시 넓고 광활합니다.’라고 이른즉슨, 소위 西字는 이 지도에 (그 섬이) 동쪽에 있는 것과 서로 다르다.” 여기서 강원도 감사 조최수가 설명하는 우산도는 죽도가 틀림없어 보이며, 청구도에 주기를 단 사람 역시 죽도로 착각하고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필사본을 보면, 우산도는 분명한 독도이다. 김정호의 의도를 떠나 이렇듯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 두었으면 한다. 고종실록 고종 19년 4월 7일條 이런 혼동은 고종실록 고종 19년(1882) 4월 7일조에 고종황제의 발언으로 분명하게 판별이 된다.(원문은 독도문서자료실에서 확인) "하교하기를, "우산도(芋山島)라고도 하고 송죽도(松竹島)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松島)·죽도(竹島)라고도 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鬱陵島)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볼 것이다. " 대한제국 당시 울릉도와 그 주위의 부속 섬에 대한 명칭 및 지리적 인식에 대한 2가지 견해를 보이고 있다. a. 울릉도 + 松竹島(竹島,
Jukdo) + 于山島 고종황제는 우산도(芋山島)가 울릉도라고 강변하는 이규원보다 울릉도와 그 부속 섬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였다. 울릉도 이외에 주위에 부속된 섬으로 죽도(발언에서는 송죽도)와 우산도(芋山島) 2섬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고종황제와 이규원의 대화에서 우리는 대한제국 당시, 중앙정부에서의 우산도(芋山島)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위치와 형세를 파악하고 오라는 고종황제의 하교 자체가 그 지리적 인식의 부정확성을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이런 부정확성이 발생한 이유는 바로 1417년부터 시작된 울릉도 공도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물론 안용복의 활동으로 인해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한동안 정확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년이 넘게 울릉도 공도정책이 시행된 까닭으로, 일개 바위섬에 불과한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의 혼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인다. 대한전도나 대한여지도에서는 竹島를 우산도(于山島)로 착각해 그려 넣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결어 현재 우리 학자들은 두 지도(대한전도와 대한여지도)에서 우산도를 울릉도의 동쪽에 정확하게 표기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전통적으로 우산도를 울릉도의 동쪽에 표기한 이전 지도를 참조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정상기형 동국지도를 답습한 사실적 도별도에는 울릉도의 동남쪽에 우산도가 그려진 지도가 수십여 장이나 존재한다. 또한 대한신지지 1907년판을 보면, 울릉도의 동남쪽에 우산도가 존재한다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분명하게 대한제국 당시, 우산도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두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에 우산도를 그려넣었다는 우리 학자들의 주장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위 두 지도는 근대의 지도로서 이전 고지도보다는 더욱 정확한 표기가 뒤따랐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전 부정확한 고지도를 그대로 참고하면서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역사 속 于山島는 독도임에 분명하나 두 지도 속 우산도가 정확한 위치에 표기되었다는 주장만은 할 수 없다고 보인다.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함께 열어 두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단,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이후의 울릉도와 주위 섬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혼동이 조선후기의 대표적 인식이라 주장할 수 없다. 즉, 착각은 착각일뿐, 그런 몇몇 잘못
인식한 기록이 조선의 두
섬에 대한 대표적인 인식이라 할 수는 없다. 일본 측에서는 이런 오류가 마치, 전체적 진실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
이후, 진실관계를 바로 잡았던 것처럼, 본래의 실체는 우산도가 독도였으며,
울릉도 주위의 섬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규원의 검찰 이후 조선후기~ 대한제국 당시 너무도 명확한
우산도의 위치와 기록이 등장하고, 이규원의 검찰일기와 더불어 황성신문
기사(1899.9.23일자)에서 그는 우산도와 죽도가 다른 섬임을 기록했다.
그 이전 한국의
기록 속 우산도는 독도임에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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