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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고지도 속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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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전기 지도에서의 '우산도'표기 동람도식 도별도 한국의 고지도에는 우산도(于山島)의 위치가 울릉도의 서쪽, 혹은 위아래에 표시되어
있는 지도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그 위치가 제각각으로 등장하는 지도는 대개 동국여지승람의 부도인 동람도를 바탕으로 그린
동람도(東覽圖)식 도별도에서 많이 등장한다.
조선 전기에는 지도의 민간소유를 금지했으나, 조선 사회가 안정화되자 민간 발간의 지도제작도 시작되었다. 특히 목판본인 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보급되면서 그 파급효과가 컸다. 이 동람도를 바탕으로 목판본 지도가 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아래의 동국지도이다. 우산도는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육지에 가깝게 그려져 있으며, 울릉도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본래의 동람도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도별도 형식으로 발간된 동람도형 지도첩이나 지도책들은 지도만으로 구성되어 오로지 지도집의 성격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독도의 명칭은 우산도, 우산, 천산도(千山島), 자산도(子山島), 간산도(干山島) 등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조선 중기까지의 지도에서는 우산도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 조선초기에서 중기까지, 조선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안용복의 활동에서도 보이듯, 子山(芋山, 于山)으로 표현된 독도가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도에서 우산의 위치를 울릉도의 동서남북 사방에 그려 넣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가. 정확한 위치표현이 지도제작의 목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산도를 우리 영토로 그려 넣는 것으로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의 어느 한쪽에 고정되게 표시된 것이 아니라, 4방에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위치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이규경이 저술한 울릉도사실변증설(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卷35)에는 이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등장한다. 輿地圖 鬱陵 未及畵于山島 而或畵一島于鬱陵上頭 稱于山('輿地圖'의 鬱陵 조에 의하면, 于山島는 따로 그리지 않거나 혹은 어떤 섬 하나를 울릉의 위쪽에 그린 것을 于山이라 칭하였다.)" 하고 있다. 지도상 우산도의 위치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에서 역시 이와 흡사한 기록이 등장한다.
죽도고증은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와 대마도주(對馬島主)가 1693~1699년에 울릉도(및 그
부속도서 獨島)를 영유하고자 하여 시도하다가 결국 이를 '조선영토'로서
재확인하고 일본인의 出漁를 금지 시키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편집한
문건이다. 이를 일본 메이지정부(明治政府)가 1869년과 1876년에울릉도
및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재조사하려고 다시 간략히 정리해서 일본외무성
문서 안에 재편입시켜 놓은 것이다. 나. 대개, 우산(于山)의 위치를 제 위치에 표현했을 경우, 판각 범위를 벗어나므로, 우산도(于山島)를 특별히 지도에 표시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인다. 즉, 지도에 넣지 않아도 좋을 일개 무인도인 독도를 표현하기 위한, 강력한 영유의사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전도에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나, 도별도와 같은 세부도에서는 어김없이 울릉도 아래쪽에 우산도가 등장한다는 사실로 보아도 판각 범위를 고려해 실제보다 울릉도에 가까운 거리에 우산도를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조선후기 김정호 선생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그
타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목판본과 일본국회도서관에서 발견된 대동여지도 필사본은 누가 보아도 한 사람이 그린 필체와 그림이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목판본(1891년)에 독도(우산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아 조선후기 조선에서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일본 측 근거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지난 1997년 10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울릉도 동쪽에 于山이라고 표기된 독도가 그려진 대동여지도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필사본을 발견한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 연구관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만들 때 독도가 빠진 것은 판각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며 이 필사본은 판각 범위와 상관없기 때문에 울릉도 동쪽에 독도(우산도)가 있었다는 주석까지 달아 독도의 존재를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목판본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 필사본은 그 특성상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있었기에 우산도를 그려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의 지도 속 '우산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클릭. 하지만, 이런 판각 범위상의 문제 이외에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면 각종문헌에서도 울릉도와 우산도를 한 섬으로 혼동하는 등, 우산도의 위치에 대한 지도제작자의 정확한 정보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조선후기 지도에서의 '우산도'표기 조선후기 사실적 도별도에 표현된 독도 조선후기에는 정확하고 사실적인 도별지도가 풍부하게 제작되었다. 동람도식 도별지도가 목판본이 많았던 것에 비하여, 사실적 도별지도들은 정교하고 그 내용이 풍부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항이나 기재할 내용이 많아져, 대개는 목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지도 중 대표적인 것이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중의 '팔도분도'이며, 조선 말기까지 제작된 정확하고 내용이 풍부한 도별지도는 이 유형의 지도를 모사하거나 수정한 지도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존하는 수십여 종의 정상기형 도별도 중 강원도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거의 빠짐없이 그려져 있는데, 독도는 우산(于山), 우산도(于山島) 라는 명칭으로 울릉도의 동쪽 또는 동남쪽, 동북쪽에 표시되어 있다. 동국지도(東國地圖)에 수록된 동국전도(東國全圖)와 강원도 지도에는 모두 울릉도와 우산 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여지도(與地圖)에 수록된 동국대총도(東國大總圖)와 강원도 지도에는 전도에는 울릉도만 표기되어 있고 도별도에 울릉도, 우산 모두 표기되어 있다. 전도에는 많은 것을 넣어야 하므로 우산의 표기가 생략된 것이 있으나 도별도의 경우에는 자세하게 표기된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조선전도' 와 정조대에 제작된 '여지도(與地圖)'첩 중의 '아국총도'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19세기 중엽(中葉)의 해좌전도는 정상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1850년대에 제작된 목판본 소형 조선전도로서, 이 지도에는 울릉도까지 수로도 표시되어 있으며, 우산도의 위치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정확히
표기되어 있다.
군현지도집 속의 독도 조선 후기에는 전국 또는 도 단위로 전국의 모든 군현의 지도를 모아 놓은 郡縣지도집의 편찬과 제작이 성행했다. 이 군현지도집은 두 가지 유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일정한 축척을 적용하여 만든 '경위선표식 군현지도집'과, 축척 적용 없이 일정한 크기로 각 군현을 그린 '비경위선표식 군현지도집'이 그것이다. 이 중, 경위선표식 군현지도집 중 20리 방안에 그린 '조선지도', '팔도군현지도', '해동여지도', 팔도지도 등이 있다. 이 지도들은 20리를 약 4.1cm로 나타내어, 모든 군현지도를 같은 축적으로 그림으로써 군현지도들 사이의 분합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전국의 각 군현지도를 연결시켜 도별, 나아가 전국지도로 합해 볼 수 있고, 나누어 볼 수도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동일한 축척을 가진 군현지도들은 대동여지도와 같은 대축척 전국지도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조선후기 비교적 독도의 위치가 정확히 표현된
지도
결어 이상 살펴본 것처럼, 조선 중기까지의 독도표기에서는 독도의 위치관계를 정확히 표현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후기 사실적인 도별도가 등장하면서, 우산의 위치는 울릉도의 동쪽, 혹은 동남쪽에 비교적 정확히 표현된 지도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간혹, 우산도를 죽도(Chukdo)로 혼동하는 사례가 존재했으나, 그러한 혼동은 혼동일 뿐 조선후기 울릉도와 독도 주위의 전체적인 지리적 인식이 될 수는 없다. 한국지도 속 우산도는 全圖에서는 표기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나, 판각 범위의 제한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세부도에서는 꼭 그려 넣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이거나, '울릉도' 또는 '관음도'라는 일본 측 주장은, 독도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히 표현한 조선후기의 지도를 간과한 것이며, 고지도의 특성을 무시한 편협한 주장에 불과하다. 우산도는 항상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인식되었기에 울릉도와 실제거리보다 가깝게 표시하였으며, 한국 고지도 속 우산도가 독도임은 수많은 한국의 문헌기록으로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아래 지도는 위에서 소개한 18세기 중엽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여지도(목판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수록 '일본국(日本國)'지도이다. 일본 측 주장대로 우산도의 위치를 문제 삼는다면, 이 지도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될 수 없다. 현재 일본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처럼 고지도상 모든 지명은 부정되게 되는 것이다. 고지도가 제작될 당시의 교통상황으로 실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 시기의 지도는 당시의 자료나 이전 자료를 기초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측 문헌자료상 안용복이 말하는 우산도가 독도임이 판명되었고, 그 이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명확하게 우산도가 독도임을 기록해 두고 있다. 또한, 조선후기로 갈수록 그 지리적 인식이 뚜렷해져 우산도는 왜인이 松島라고 한다는 기록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의 오키도와 인접해 있음까지 밝히고 있다. 이렇게 문헌자료에서 우산도가 독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상, 한국 고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임이 틀림없다. 지도상 표기할 필요가 없는 일개 바위섬을 지도에 표기함으로써 강력한 독도 영유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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