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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명칭 혼동에 대한 일본 측 주장에의 반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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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측은 서양의 잘못된 지리적 전거로 인하여,
19세기 중반이후, 일본에서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명칭의 혼란이 있었음을 근거로, 일본지도에
한국영토로 표기된
송도(松島)가
현재의 독도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문서에 등장하는
松島<1877년
태정관 공문서나 내무성 공문서와 1869년~1870년의
일죽도송도조선부속이상성후시말(一竹島松島朝鮮附屬二相成候始末)>가 현재의
독도인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까지 한다.
위 지도들은 일본의 지도에 松島, 즉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록된 지도이다. 일본에서는 위 지도의 松島가 현재의 울릉도이며, 송도 북서쪽의 竹島는 가상의 섬 아르고노트라고 주장한다. 독도영유권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일본영토와 채색을 달리하거나 확실하게 선을 그어 조선의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 이외에도 한국에서 독도영유권의 근거로 제시하는 일본지도의 일부에는 일본의 영토가 함께 포함이 된 것도 있으나, 이 지도들 역시 울릉도인 竹島와 독도인 松島는 한국영토에 바짝 붙어 있어, 누가 보아도 쉽게 두 섬을 한국영토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는 지도들이다. 위 지도들에서의 松島는 울릉도의 위치에 있는 것이 분명하며, 그 모양 또한 울릉도의 모양과 흡사하다. 竹島역시 한반도에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 거기에다가, 두 섬의 크기를 서로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竹島는 서양지도의 '아르고노트(Argonaut)'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18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지도 속 竹島는 모두 서양지도의 가상의 섬, '아르고노트' 이므로, 松島(독도)를 한국영토로 표기한 위와 같은 지도들의 증거능력은 전무한 것일까? 1. 일본은 잘못된 서양의 전거(典據)에 따라 한동안 竹島라고 부르던 울릉도를 松島로 불렀으며, 이에 더하여 松島라고 부르던 독도를 1905년 일본 각의(閣議)의 논의에 의해 竹島로 부르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두 섬의 명칭이 서로 뒤바뀌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죽도와 송도가 일본영토가 아니었기에 그 지리적 인식이 모호했음을 일본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17세기부터,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음을 주장하는 일본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득찬 거짓인가를 알 수 있다. 2. 竹島와 松島가 서로 혼동된 것이 분명하나, 일본인들은 여전히, 울릉도를 竹島(후에 松島), 독도를 松島(후에 竹島) 라는 명칭으로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가. 1827년
러시아의 Krusenstern은 태평양해도집을 발행했다.
여기서 그는 울릉도를 다줄레(Dagelet)로 하고, 그
북서쪽에 아르고노트(Argonaut)를 그려 넣었으며,
설명문에 일본에서 말하는
Takasima(竹島)와
Argonaut가 같고,
Matusima(松島)와
Dagelet가 같은 섬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1804년
10월부터 6개월간 일본 나가사키에서
조석(潮汐)조사를 한 바 있으며, 그가 일본에 있는
동안 일본학자들과 교류(交流)가 있었던 점으로 보아,
그의 이런 견해는 일본인들로부터 들은 지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인은 동해상에 두 섬이 있으며, 그 두 섬이 일본에서의 전통적인 이름인 울릉도를 가리키던 竹島와 독도를 가리키던 松島라 인식했으며, 서양지도의 존재하지 않는 섬, '아르고노트'를 일본인은 울릉도(竹島)로 생각하고 지도에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나. 일본에서 독도영유권의 근거로 내세우는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를 비롯한 일본지도에서는,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를 각각 竹島(Takeshima)와 松島(Matusima)로 표기하였다.
이 지도들은 대부분 일본에서의 울릉도와 독도 명칭의
혼동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1800년대의 지도라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울릉도를
竹島로 독도를
松島로 인식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일본여지노정전도( 日本輿地路程全圖, 1779)의 울릉도 독도 부분 확대도 磯竹島는 일본에서의 울릉도의 별칭이다. 당연히 松島는 은주시청합기의 기록상 독도가 된다. 일본여지노정전도( 日本輿地路程全圖)는 1779년, 1791년 1811년, 1833년 재판되었으며, 1800년대 중반이후까지 계속 증판되었다. 또한 일본측에서 독도영유권의 증거로 제시하는 대일본여지전도(大日本輿地全圖), 대일본해륙전도(大日本輿地全圖)등도 독도명칭의 혼동을 보이는 시기 이후에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일본에서의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명칭은 시기를 불문하고 20세기 초반까지 죽도와 송도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1880년까지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키던 명칭이 죽도와 송도였음은 일본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에서는 독도 명칭의 혼동을 이유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식한 19세기 중엽이후의 모든 문헌자료와 지도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
우치다 신사이'의
대일본부현전도(1872, 大日本府縣全圖),
소오모칸(宗孟寬)'의 개정 실측조선전도(改定
實測朝鮮全圖, 1894)
대일본부현전도(大日本府縣全圖) - 竹島는 북위 37도 85분 정도에, 동경 129도 90분 정도에 위치해 있어, 서양지도상의 아르고노트 위치에 가깝다. 그러나, 竹島 옆에 은주시청합기의 내용과 함께 일운(一云) 의죽도(礒竹島)라고 한다는 주기가 있다. 은주시청합기상 기죽도(磯竹島, 본문에서는 礒竹島)는 일본에서 울릉도를 부르던 명칭으로, 아르고노트를 울릉도인 竹島로 착각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도이다. 개정 실측조선전도(改定 實測朝鮮全圖) - 竹島는 북위 37도 90분, 동경 130도에 위치해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 위치에 근접해 있으며, 松島의 모양 또한 울릉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竹島에 울릉도(鬱陵島)라는 명칭을 함께 주기하여 竹島와 鬱陵島가 같은 섬임을 표기하고 있다. 于山島는 그 서쪽에 그려져 있어 옛 한국의 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도를 통해 1894년 당시까지도 일본인에게 서양지도의 아르고노트는 竹島, 즉 울릉도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동남쪽의 松島는 독도가 될 수밖에 없다. 서양지도에서는
아르고노트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섬이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인지해 온 것처럼,
동해상의 두 섬,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였던 것이다.
이 지도와 마찬가지로 竹島라는 명칭옆에 鬱陵島(울릉도)를 주기한 지도가 위에서 제시한 1875년 제작된 동각 조선여지전도(朝鮮輿地全圖)이다. 이런 지도들은 우산도와 송도를 다른 섬으로 오인했으나, 竹島는 곧 울릉도라는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듯, 서양지도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생긴 지리적
인식의 혼동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1800년대
후반까지의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은 분명하게
竹島와
松島였다.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를
일본인은 울릉도로 생각하고 지도상 竹島로 표기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일본인의 지도 속 울릉도와 독도
표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76년 카시하라
요시나가(樫原義長)가 그린 두 장의 지도와 1877년의
지도를 살펴 보도록 하자.(사진 자료; UC버클리 대학
도서관 소장)
이 두 장의 지도에서 그는 울릉도를 竹島(죽도)로
주기하였으며, 그 밑에 독도를 松島(조선팔도도에서는
호칭표기가 없음)라는 호칭으로 그려 넣었다. 장중일본전도에서는
竹島는 동경 129도~130도 사이 북위 38도 쯤에 위치해 있어
서양지도상의 Argonaut가 분명하나, 竹島에 "日本ニテハ竹島,
朝鮮ニテハ 우리는 카시하라
요시나가(樫原義長)의 1876년 두 장의 지도를 통해 그가
竹島를 울릉도, 松島를
독도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는 1876년 당시, 울릉도를
竹島, 독도를 松島라는 호칭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1877년의
지도를 보면, 울릉도를 가리키던 竹島가
사라지고, 대신 竹島밑의 松島가 울릉도를 대신하고
있다.
松島 동남방에는 현재의 독도를 "리윤코루토로다쿠( リユンコ-ルトロタク)"라는 호칭으로 새로 그려 넣었다. 이렇게 울릉도의 명칭이 1년 사이에 죽도에서 송도로 바뀌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1877년, 그가 서양지도를 참조하는 과정에서 아르고노트(Argonaut)가 현재의 울릉도가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섬임을 알고 황급히 지도에서의 竹島라는 명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1876년의 지도에서 죽도가 삭제되면서, 松島가 울릉도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으며, 본래의 松島라는 이름을 잃어 버린 독도를 서양지도에서의 리안쿠르트 락스(Liancourt Rocks)라는 명칭으로 대신한 것이다. 따라서 1876년 장중일본전도에서의 죽도와 송도는 그에게 있어 동해상의 두 섬, 울릉도와 독도를 호칭한 것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단지 1876년 지도에서 카시하라 요시나가(樫原義長)는 서양지도의 아르고노트를 울릉도로 착각하여 竹島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 뿐이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1800년대 중반, 한반도에 실제보다 근접해 그려 넣은 竹島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울릉도를 뜻하며, 죽도 아래쪽에 그려 넣은 松島는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실례는 1800년대 중반의 독도표기 일본지도에서 상당수 찾을 수 있다. 아래 지도 역시 서양지도의 실존하지 않는 섬, 아르고노트를 그들이 전통적으로 인지해 온 울릉도의 호칭인 竹島, 기죽도(磯竹島)임을 주기하고, 그 옆에 은주시청합기의 한 구절을 적어 넣은 지도이다. 竹島는 그 위치와 형태가 서양지도에서의 아르고노트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아르고노트를 磯竹島인 울릉도로 착각하여 지도에 표기해 놓았다. 은주시청합기에 등장하는 2섬이 울릉도와
독도임이 분명한 이상, 죽도와 송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 '동해내 죽도외 1島 지적편찬( 日本海內 竹島外一島 地籍編纂)'에 대한 질품서(質稟書)에 대한 답변으로 일본 태정관(太政官)이 내무성에 내려보낸 지령문에서도 이 점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 문서에서 죽도외 1도에서의 竹島는 울릉도이며, 松島는 '독도'라는 사실이 증명되어었다. 자세한 설명은 이곳을 클릭 이 문서가 발행된 시기가 1877년으로, 일본에서 竹島와 松島 명칭의 극심한 혼동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1800년대 중반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분명하게 울릉도와 독도를 竹島와 松島로 인식하고 있었다. 1878년, 1880년 일본해군성의 실측조사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위한 내각의 결정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각각 松島와 竹島로 호칭하여, 이전의 죽도와 송도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뒤바뀌었지만, 일본인에게 송도와 죽도는(또는 죽도와 송도) 항상,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876년에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란 사람이 ‘송도개척지의(松島開拓之議)’를 외무성에 제출, 해군성에 그 실측조사를 의뢰한 사건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부족하여 울릉도를 송도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전통적인 일본의 호칭인 죽도와 송도가 동해상의 두 섬인 울릉도와 독도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어> 일본에서 울릉도와 독도 명칭에 혼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1800년대 중반이후, 일본에서의 서양지도의 번역도가 크게 유행한 데 기인하고 있다. 그들은 서양지도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가상의 섬 아르고노트와 울릉도인 다줄레 두 섬이 동해상에 표시된 것을 보고,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인식해 왔던 것처럼, 일본영토에서 먼 것이 竹島(울릉도), 가까운 섬을 松島(독도)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1800년대 중반이후, 일본지도에 서양지도의 가상의 섬 아르고노트(Argonaut) 위치에 竹島가 표기되어 있다고 해도 일본의 지도에 등장하는 죽도와 송도는 각각 울릉도와 독도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은 분명하게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식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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