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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존재하지 않는 섬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오인한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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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용복의 활동으로 한일 양국간 울릉도 분쟁이 표면화되어 일본의 에도막부는 죽도 1건으로 울릉도가 본래 한국영토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 '죽도 1건'에는 그 부속 섬인 송도(독도)까지 포함되었기에, 그 후 일본인은 19세기 중엽까지 거의 150여 년을 울릉도와 독도에 가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한때 두 섬에 대한 명확한 지리적 인식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에서의 인식은 희미해져 갔다. 일본에서 19세기 중엽부터 서양지도상 Argonaut를 竹島(울릉도)로 착각한 가장 큰 이유이다. 일본 측 주장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제시하며 죽도도해 금지는 있었으나, 송도(독도)에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우에몽(八右衛門) 사형판결기록(1836) 울릉도에 대한 도해가 금지된 후 石州의 야우에몽(八右衛門)은 울릉도에 도해하여 밀무역을 한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야우에몽은 독도까지 항행을 하는 것으로 허락을 받고 울릉도까지 항행을 하여 밀무역을 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右最寄松島へ渡海之名目を以て竹島え渡り稼方見極上弥々益筋に有之ならば取計方も有之, 시마네현사(島根縣史) 제3장 연혁 (p306)) 일본에서는 이 기록을 유력한 근거로 삼아 송도까지의 도해는 죽도도해 금지령 이후에도 가능했으며, 송도를 일본령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야우에몽(八右衛門)에 관한 기록은 죽도고증에도 등장하는데, 시마네현지의 기록과는 다소 상이한 문장을 보이고 있다. 반론 가. 이에 대해 이케우치 사토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나. 시마네현의 위 기록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 죽도 1건 당시 일본 막부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을 살펴 보도록 하자.
1695년 안용복의 일본행으로 문제가 생기자, 막부의 노중 아베 분고노카미(阿部豊後守)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해 12월 24일 소가 로쿠로베에(曾我六郞兵衛)를 불러 7가지 항목을 질문하였는데, 위의 글은 전날 질문에 대한 호키슈 소가 로쿠로베에(曾我六郞兵衛)의 답변서(1695년 12월 25일 자)이다. 막부의 질문 제1항이 "因幡州(인바슈)와 伯耆州(호키슈)에 竹島가 언제부터 부속되어 있는가?" 라는 것이었고, 이에 소가(曾我六郞兵衛)는 竹島는 양국('因州'와 '伯州')에 부속된 섬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막부에서는 질문
7항에 "竹島 이외에 양국에 부속되어 있는 섬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막부의 노중은 일단 竹島가 인바슈와 호키슈에 부속된 섬으로 가정하고
질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竹島 이외에도 양국에 부속된
섬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 물음에 "竹島, 松島 이외에 양국에 부속되어 있는 섬은
없습니다."라고 하여 묻지도 않은 松島까지 거론해 답을 하고 있다.
가장 앞서 竹島가 '因州'와 '伯州'
양국의 부속 섬이 아님을 밝혔으므로 송도 역시 양국에 부속된
섬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이어서 죽도와 송도 이외에 주위에 따로
존재하는 섬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경우에서와 같이 당시 일본에서는 언제나
竹島와 松島를 한 묶음으로써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노중
아베 분고노카미(阿部豊後守)는
1696년 1월 28일 죽도도해금지 조처를 내린 이후에도 좀처럼 울릉도가
조선령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에도막부내에서의 우익적 성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에도막부는 죽도도해면허를 내릴 당시뿐 아니라, 그
전후에도 울릉도(竹島)가 조선령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찍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이 분명하여 죽도도해금지를 결정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竹島가 이나바(因幡)에 속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심문 결과를 토대로 일본의 에도(江戶)막부는 1696년 1월, 일본인의 竹島 출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음을 알리는 공문을 조선 측에 전달했다. 심문 과정 중 위 문서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이상, 에도 막부의 죽도도해금지령에는 송도(독도)까지 포함돼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또한, 죽도도해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이전의 죽도도해면허·송도도해면허는 자연히 취소되었으며, 이후로도 송도에 대한 도해면허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볼 때, 죽도 1건에 송도까지 포함되었음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나. 일본은 19세기 중엽 이후,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극심한 명칭상 혼동이 존재했다. 송도(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식해 언제나 가볼 수 있는 섬이었다면, 독도의 명칭이 두 번씩이나 바뀐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독도에 가지 못했기에 생긴 명칭상의 혼동인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외국의 잘못된 지리적 인식을 근거로 자국의 섬 이름을 바꾼 경우가 있는가? 이런 독도의 명칭혼동은 '죽도도해금지'에 송도(독도)까지 포함이 되었기에 일본인이 독도에 가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다. 안용복의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임이 오키섬에서 발견된 '안용복일행조사보고서'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죽도 1건에 송도까지 포함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증거가 확보된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클릭 (번역문이 실린 학술지를 알아냈습니다. 도서관에 한번 나가봐야겠네요.) 라. 1877년 일본 태정관은 '죽도 외 1도(松島)'는 일본과 상관이 없는 섬이라는 지령서를 내렸다. 이때 참고한 문서에 죽도 1건에 관한 공문서가 부속되었으며, 일본 태정관은 죽도 이외 송도(독도)까지 지령서에 포함을 시켜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지령했다. '죽도 1건'에 송도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일본 최고 의결기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마.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주도(主島)와 속도(屬島)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었다. 1907년 시마네현 다케시마(竹島)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이 쓴 ‘죽도 및 울릉도(竹島及鬱陵島)’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글을 쓴 사람은 1906년 3월 울릉도를 방문하였던 시마네현 사무관 가미니시 유타로(神西由太郞) 일행의 한 사람으로 당시 시마네현 소학교 교장인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이다. 죽도(울릉도)가 원록年間에 조선 영토로 인식됐는데, 해군수로부가 조선수로지에 울릉도를 송도라고 기록해 독도를 竹島(다케시마)로 잘못 알 게 되었고, 이것이 죽도(울릉도)가 원록년간에 조선으로 넘어갔다는 사실과 혼란을 일으켜 竹島(독도, 다케시마)가 조선령이 된 것으로 오인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의 견해는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일본영토에 불법 편입하고 그 정당성을 피력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 해군수로부는 조선수로지에 울릉도를 송도라고 기록했으나, 그와는 별도로 독도를 '리앙꼬르도 열암'이라는 명칭으로 조선령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선수로지 위 글의 제목을 보자. ‘죽도 및 울릉도(竹島及鬱陵島)’ 죽도(독도)와 울릉도를 함께 나열하고 있다. 죽도(독도, 다케시마)가 일본 해군수로부의 실수에 의해 조선의 영토로 오인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면서, 그 자신 역시 이미 시마네현 고시로 일본에서 독도를 불법편입한 시점에서조차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독도(松島)를 울릉도로 가는 길목에서 처음 발견하였으며, 그 후로 계속 죽도(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서 인식해 왔다. 죽도·송도지도에서 역시 송도는 죽도의 부속 섬으로 그려 넣었으며, 일본의 어느 지도·문헌에서나 죽도와 송도를 하나로 묶어 인식하고 있다. 즉 일본에서 죽도(울릉도)를 포기했다면, 당연히 송도(독도) 까지 포함된 결정임을 일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죽도송도지도(竹島・松島之圖, 1724년)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의 견해는 여러모로 잘못 인식된 것이나 그의 발언을 통해 일본인들은 동해상에 존재하는 두 섬이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본에서의 두 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으로 인해 그들은 서양지도상 실재하지 않는 섬, 아르고노트를 그들이 알고 있던, 일본의 이전 자료에 등장하는 죽도(울릉도)로 쉽게 착각했던 것이다. 즉, 한일 바다 사이의 두 섬은 죽도와 송도 이외에 다른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고했던 것이다.
윗줄의 지도는 대개 서양지도를 번역하면서 아르고노트를 竹島라는 이름으로 적어 넣은 지도로 그 섬의 모양이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의 형태와 일치한다. 그러나 밑의 지도를 보면 죽도가 서양지도의 아르고노트의 위치에 있으나, 섬의 형태는 위 번역지도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의 형태보다는 울릉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일본의 에도시기에 등장하는 竹島와 松島의 모습과 닮았다. 이런 아르고노트 위치의 울릉도 모양의 竹島가 그려지게 된 배경은,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착각해 일본의 이전 지도에 보이는 죽도의 모습으로 아르고노트를 그려 넣은 데에 있다. 180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 지도 속 아르고노트의 위치에 존재하는 竹島의 형태가 울릉도의 형상을 한 지도가 수없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18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지도 속 죽도는 울릉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2. 죽도도설(竹島圖說, 1751~1753)에는 '조선~죽도(울릉도)~ 송도(독도)~오키까지의 거리를 각각 40, 40, 60里로 기록했는데, 죽도도설 상의 거리표기는 그 이후 일본에서의 전형적인 거리로 인식되었다. 이 지도는 일본의 세계지도인 중정만국전도의 조선부분으로써, 竹島에 "アルゴナウト島卽竹島(아르고나우또島 즉 竹島)"라는 직접적인 주기내용이 등장해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오인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지도이다. 지도상 오키시마~松島~竹島~한반도 사이의 거리에 주목해 보자. 지도제작자가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를 울릉도인 죽도로 착각할 충분한 여지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죽도도설의 거리표기와 위 지도상 오키~松島~竹島~한반도 사이의 거리는 비교적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결어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일본인은 죽도인 울릉도를 한반도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했으며, 동해상에 존재하는 두 섬은 죽도와 송도라는 전통적인 지리적 인식이 존재했다. 이로 말미암아 서양지도상 가상의 섬인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오인한 것이다. 따라서 18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일본지도에 동해상 죽도와 송도 두 섬이 표기되었다면, 십중팔구 울릉도와 독도를 표기한 지도로 보아야 한다. 일본은 존재하지도
않는 서양지도상의 아르고노트를 울릉도인 죽도로 죽도록(^^) 착각해
지도에 표기했다. 그들은 이제와서 19세기 중엽이후의 죽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일본지도상 죽도는 울릉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시마네현 고시 이후 독도의 일본식 정식명칭인 竹島(Takeshima)로도 한국령으로 표시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골적으로 독도(竹島)를 한국령으로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의 독도
이 지도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이후에 발행된 지도로 울릉도가 松島로 독도는 竹島(Takeshima)로 표기되어 있다. 죽도는 송도의 북동쪽에 있어 그 위치가 독도의 경우와 많이 차이가 나지만, 일본에서는 시마네현 고시 이후에 독도를 竹島(Takeshima)로 개칭했기에 현재의 독도를 표기한 것이 틀림없다. 시마네현 고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죽도(다케시마)를 한국전도에 표기해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일본에서 독도를 호칭하던 松島, 竹島(Takeshima), 리앙꼬루 암(リアンコル岩), 3가지 명칭 모두에서 독도를 한국영토로 표기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문헌기록뿐 아니라 모든 정황에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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