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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토론 참가자
wedgie(Steve
Barber)씨의 독도 홈페이지는 아래 주소입니다.
조선국교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 1869~1870, 일본외교문서 제3권)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에 대한
토론내용입니다. 우선, 문서내용을 살펴 보죠.
pacifist씨는 일본 메이지 정부의 독도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와 명칭 상의 혼동이 있었다는 이유로 위 문서상 松島는 독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죽도인 울릉도와 송도인 독도가 조선에 부속한 섬임을
밝혔습니다. ※佐田白茅/岸田吟香/松田敦朝 작 '(改訂新鐫)朝鮮全圖'가 있으나, 지도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 지도에는 분명 竹島와 松島가 한국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리라 추측된다. 일본에서는 현재 일본인이 그린 조선의 지도 중 울릉도를 우산도로 표기하는 등, 극식한 혼동을 보이는 지도들만 공개하고 있다. 하루빨리 독도의 자유로운 연구를 위한 자료공개가 요구된다.(^^ 뭐, 일본에 좋을 건 없습니다.)
pacifist씨는
본문에서의 죽도와 송도가 오늘날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합니다.
18세기 후반, 울릉도에서 인삼이 산출된다는 사실이 국내에 널리 알려져 상인들이 인삼 채취를 목적으로 울릉도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해 12月 9일條에도 삼척영장 홍우보(洪雨輔)가 울릉도에 들어가 인삼을 채취해 온 잠상을 염탐하여 체포했다가 뇌물을 받고 이를 풀어주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몰래 울릉도에 들어가서 인삼을 수십근 채취해 왔다가 발각된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루 미루어 울릉도에 인삼이 자연으로 난다는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의 기록에서 竹島는 명백한 현재의 울릉도입니다. 문제는 松島입니다. 물론 안용복의 활동에 松島인 于山島가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용복이 일본에 조선령으로 확인받은 영토에 松島가 포함되었다고 인식한 명확한 기록이 바로 1877년 태정관의 지령서입니다. 1877년 10월 3일 태정관의 지령서에는 "元祿 5년 朝鮮人이 入嶋한 이래 舊정부와 해당국[조선]과의 왕복의 결과 마침내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들어 상신한 품의의 취지를 듣고...... 竹島와 外 1島의 건은 본방(일본)과 관련이 없다는 지령문을 내립니다."라고 되어 있죠. 外1島가 명백한 松島임은 이전 글에서 이미 증명했습니다. 일본 최고 의결기관의 공식적인 견해가 안용복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죽도 1건에 外 1島인 송도(독도)가 포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이와 같은바, 사실 더는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pacifist씨가 1870년에 근접한 시기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이 있었던 지도를 제시하는군요. 1867년 가츠가이슈(勝海舟)의 '대일본연해약도(大日本沿海略圖)' 입니다. 영국의 지도를 일본어로 번안한 지도죠.
이 지도상 竹島는 가상의 섬인 아르고노트, 松島는 울릉도, '리앙꼬루도 로쿠(リアンコ-ルトロツク)'가 독도입니다. 먼저, 이 지도와 '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과의 관련성을 살펴 보죠. 문서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竹島가 현재의 울릉도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상 아르고노트인 竹島는 아니라는 것이죠. pacifist씨가 무리하게 이 지도와 문서를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서상 조선에 속한 섬이라는 죽도가 울릉도라면 당연히 송도는 독도가 됩니다. 이미 수십 번 언급했지만, 일본에서 명칭상의 혼동이 극명하게 보이는 지도는 대개 서양, 특히 영국의 지도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생긴 지도에서 많이 보입니다. 서양의 잘못된 지리적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생긴 오류이죠.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에서는 이러한 혼동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내용설명을 통해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竹島가 울릉도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죠. 만일 이 지도에서와 같은 명칭 상의 혼동이 있었다면 당연히 松島에 대한 설명으로 울릉도를 기술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일본정부 자체에서 울릉도를 송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878년 3월, 1880년 9월 두 차례의 실측조사
이후의 일입니다. 가츠 가이슈의 지도는 민간의 지도이죠. 일본 메이지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도 일본의 명칭혼동에 대해서는 거론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명확한 공식이 없기 때문이죠. 일본이 울릉도를 松島라고 칭하기 시작한 이후 십수 년 후까지도 일본에서는 竹島와 松島라는 명칭을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키는 섬으로 기록한 지도가 상당수 발견됩니다.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에 대한 부분은 제 home의 이미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지도에 등장하는 죽도와 송도 2섬만이 표기된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표기한 것이라는 사실이죠. 아르고노트 위치에 존재하는 松島에 울릉도라고 주기하거나,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을 적어 놓은 지도가 상당수 발견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일본에서는 잘못된 서양지도를 맹신하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대로 동해상의 두 섬은 울릉도와 독도라고 파악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혼동을 이유로 1800년대 중반 이후의 竹島와 松島가 울릉도와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일본인은 울릉도와 독도로 알고 표기를 한 것이죠. 일본에서의 울릉도 독도 명칭 상의 혼동은 민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달랐습니다. 안용복의 공이 크죠. 안용복의 활동 이후, 일본어부들은 울릉도인 죽도와 독도인 송도에 가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사정을 내부문서를 통해 일본정부는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여기서 한 가지 더 파악할 수 있는 사항이 바로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이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안용복의 활동에 독도인 松島가 포함됨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울릉도인 죽도에만 도해가 금지되었다면, 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독도에 대한 명칭혼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메이지 정부의 1877년 태정관 지령서에 '외 1도'인 송도를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했음과 아울러 이러한 명칭혼동으로부터 안용복의 활동에 송도인 독도가 포함돼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거죠.
당시 일본에서의
독도 명칭에 대한 인식을 3가지로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시마네현 이외의
일본 민간의 경우를 보죠. 이들은 막연히 동해상에
죽도와 송도라는 2섬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물론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역시 울릉도 주민은
우산도가 독도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나, 종종
우산도를 죽도로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던 사실과
필적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각종 문서나 지도를
통해 대강의 내용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그러나, 일본정부는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정보수집이 용이했죠. 1877년 태정관 지령서가 나올 당시 명확히 일본과 관계가 없는 땅임을 지령한 데에는, 시마네현의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접하고 일본 내부문서를 참조해 竹島와 松島가 과거 '竹島 1건'으로 조선과의 분쟁에서 조선령으로 확정했음을 파악한 것이죠. pacifist씨는 일본 민간과 일본정부를 동일시해서 가츠 가이슈의 혼동을 일본정부에 바로 연결하려 하나 어림없는 소리가 됩니다. 물론, 메이지 정부내에서 죽도와 송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대하지 못해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 극단적인 상황은 1880년 9월의 아마기함(天城艦)의 송도순시 보고로 끝을 맺습니다. 일본 내 송도개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아마기함의 실측이 실행됩니다. 여기서 어이없게도 해군소위 미우라(三浦)는 松島가 울릉도이며, 竹島가 울릉도 근방의 하나의 암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게 되죠. 일본정부에서 공식적으로 松島라는 명칭을 울릉도에 붙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 하나 있어요. 죽도와 송도라는 명칭이 동해상의 2섬이라는 사실만큼은 일본 민·관 모두 일치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에 등장하는 松島가 어느 섬인지 명칭 상의 혼동이 심각했던 메이지기이므로 특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일본인들이 역사적으로 동해상에 존재한다는 두 섬이 울릉도와 독도인 죽도와 송도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문서내용상 죽도가 울릉도라는 명확한 기술내용이 등장한다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문서상 송도는 독도가 되는 것이죠.
한가지 더하면,
일본외교문서에 실린
'울릉도[竹島]와 독도[松島]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始末(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은 단순한
보고문이 아닙니다.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이 지령한
조사사항이죠. 일단 일본외교문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단순한 보고문 정도의 의미 없는
일본의 내부문서라는 주장은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메이지기 그들의 침략의도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인 사실로서 울릉도(죽도)와 송도(독도)를 조선영토로서 파악하고 있었음을 이 문서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토론내용이 너무 길고,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은 관계로 pacifist씨의 의견중 논할 만한 내용만 간략히 발췌합니다.
송도가 죽도의 인도(竹島ノ隣島)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송도도해면허를 앞둔 1661년 무라까와 와 오다니 가문 사이에 주고 받은 서신에는 왠일인지 같은 부류의 표현이 등장하는군요. 또한 일본지도상 죽도와 송도는 항상 같이 등장합니다. 일본에서는 죽도와 송도를 하나로 묶어 인식했음이 분명한데, 왠 헛소리를 자꾸 하는지!
은주시청합기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미 이전에 은주시청합기의
해석은 여러 가지 근거로 죽도와 송도가 한국령임을
기록한 것임을 증명해 두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곳을
클릭.
은주시청합기의 2섬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입니다. 메이지기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착각했는데, 왜 아르고노트와 같은 위치 같은 형태의 섬에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을 주기 했을까요?(^^)
위에 언급된
일본여지노정전도 역시 명확하게 한국령으로 기록해
둔 지도입니다. 일본영토로 생각했다면, 한국과 같은
채색으로 일본과 분리할 이유가 전혀 없죠. 100%
지도상 채색이 영유권을 구분하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지도제작상 채색을 달리해
지역구분을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또한 하나의
지도뿐 아니라 수많은 지도에서 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죠.
이 발언에서는 pacifist씨의 왜곡된 자료해석의 극치를 보여줍니다.(pacifist씨 역시 왜곡 성향으로 보아 일본인일 가능성이 90% 이상.^^ 곳곳에 일본식 한자가 보입니다.)
이규원의 검찰일기에
등장하는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을 다시 발췌해보죠.(李奎遠 鬱陵島 檢察 啓本草 1882년 5월
13일)
분명 이규원은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독도인 우산도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산도를 울릉도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하여 울릉도에 소속된 섬으로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성인봉에서 1년에 독도를 볼 수 있는 날은 대략 30일 정도죠.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처럼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청명한 날이면 목격이 됩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은 청명한 날에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죠. 단지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죠. 대신 우산도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함으로써, 그가 이전 일기에서 관음도를 島項, 죽도를 竹島라고 표현한 것을 감안한다면, 우산도는 독도임을 명백히 하고 있는 글입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우산도를 울릉도로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로 칭하는 것과 같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을 하는 진짜 이유는 그 자신이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의 자신의 실수때문입니다. 그 실수가
울릉도에 실지로 도착해 조사해본 후, 바로 잡힌
것이죠. 그다음 pacifist씨의 발언은 왜곡의 극치를 달립니다. 이전에 인죠이 재팬 elseorand씨에게 오류를 지적해 준 내용인데, 그와 같은 왜곡된 내용을 계속 써먹고 있군요.
그럼,
이규원이 고종황제와 문답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1882년 4월 7일.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의 기록입니다. pacifist씨는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마친 후에 그런 사항을 보고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군요. 그의 실제 보고내용은 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에 등장하듯,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내용입니다. 이규원은 위의 기록에서처럼 고종황제를 알현한 당일 1882년 음력 4월 7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4월 30일 울릉도에 도착해서 울릉도 검찰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 자신이 고종황제에게 울릉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아뢴 일을 깨닫고 5월 13일 자 일기에 변명을 하는 것이죠. 결국 위 고종실록 기사를 보건대, 고종황제의 견해가 옳았던 겁니다. 한마디로 이규원으로서는 조금 쑥스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pacifist씨가
또 하나 왜곡한 것은 "Its distance from
Ulleungdo was 三數十里, that was 1.2~4km" 이
발언입니다. 뭐, 왜곡이라기보다는 정확한 기록을
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원문에서는
三數十里로 1里를 420m로 보았을 경우, 12.6km이상이
됩니다. 평이하게 1里를 400m로 계산해도 三數十里는
12km 이상이 됩니다. 도대체 어떤 계산에 의해서
1.2~4km가 된다는 것인지? 아마도 3~10里라고
해석하는 왜곡의 극치를 보이는 듯합니다. 고종실록은 일제강점기 편찬된 실록입니다. 그래서 보통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할 때, 고종실록은 포함을 시키지 않죠. 왜곡이 심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럼, 여기서 1里를 일본식으로 계산해 볼까요? 일본식 1里는 4km입니다. 그럼, 三數十里※ 120km 이상이 됩니다. 실제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는 87.4km이죠. 이렇게 되면 이규원이 말하는 송죽도가 독도일 가능성도 생기는군요. 이건 그냥 재미삼아 계산해 본 겁니다. 여하튼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 이규원의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호칭과 지리적 인식은 정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검찰에 임해서 울릉도와 우산도는 다른 섬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고종실록 국역본에는 '三數十里'를 20~30里로 번역했군요. 이에 맞추어 계산해 보면, 일본식 1里를 적용해서 80리~120里로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실제거리(87.4km)와 정확히 일치됩니다.(그러나 이 해석은 저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네요. "30여 리"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용복의 기록이 일본에서 발견된 사례를 한번 간단히 보죠.
오키섬의 무라카미 가문에 전승된 안용복 일행 조사보고서입니다. 조선 8道의 명칭이 나열돼 있으며, 江原道 밑에 "此道中竹島松島有之(이 道 안에 죽도와 송도가 있다.)" - 누가 봐도 뻔하게 강원도에 대한 주기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무리하게 此道中을 此途中(이 도중에)로 해석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한마디로 어이가 없죠.)
wedgie씨의
독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찬미하고 pacifist씨의
투철한 왜곡정신을 성토하며 오늘은 이상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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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 map of 日本輿地路程全圖 was made in the 1700's and it had revised sometimes after the years. So the island Matsushima in the map is definitely Takeshima/Dokdo but it's a different island from the 1870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