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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내용이 실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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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gie and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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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st and Ponta

wedgie(Steve Barber)씨의 독도 홈페이지는 아래 주소입니다.
http://www.dokdo-takeshima.com/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독도 명칭의 혼동에 대한 부분을 주로 다루겠습니다. 일본에서는 1800년대 중반 이후 일본내에서의 독도 명칭의 혼동을 이유로 松島를 한국영토로 기록한 모든 문서자료와 지도를 부정하고 있죠.
 그럼, 토론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보겠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토론 내용이 실린 블로그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측 주장에 대한 반론을 목적하므로 wedgie씨의 통쾌한 반론부분까지 모두 소개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Dear wedgie,

You wrote about the document 竹島松島朝鮮附屬.
당신은 竹島松島朝鮮附屬 문서에 대해 썼습니다.
It needs some explanations.
그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Actually the document clearly says that both Takeshima and Matsushima belong to Korea. But does this "Takeshima" or "Matsushima" really mean Takeshima/Dokdo today?
실제로 문서에는 분명히 죽도와 송도가 모두 한국에 속해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도나 송도는 실제로 오늘날의 독도를 의미합니까?

The answer is no.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Because Takeshima/Dokdo was called as Liancourt rocks or Ryanko-to in these days.
독도는 이 당시에 Liancourt rocks 이거나 '얀꼬도'로 불렸습니다.

Please look at the map (1867):
1867년의 지도를 보세요.
http://toron.pepper.jp/jp/take/hennyu/sada.html

There are three islands seen, from left to right, "Takeshima", "Matsushima-Hourilu Rokku (Holly rocks)", and "Rienkouto rokksu (Liancourt rocks)".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죽도", "송도(Holly rocks)", 그리고 리안꼬루도 로쿠(Liancourt rocks)입니다.

"Takeshima" in this map is Argonaut island in the western maps, it was later recognised as an error and vanished from the maps after this era.

지도상 竹島는 서양지도에서의 아르고노트(Argonaut)입니다. 그 섬은 좀 더 후에 잘못 인식된 것으로 판명돼 이 시기 이후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Matsushima" in this map is Ulleungdo.
And "Liancourt rocks" are today's Takeshima/Dokdo.
In these years, the names of Takeshima and Matsushima were mixed up because of influence of western maps.

지도상 松島는 울릉도예요.
그리고 "Liancourt rocks" 는 오늘날의 독도/Takeshima입니다.

So the two islands related in the 1870 document didn't include Takeshima/Dokdo.
그래서 1870년 문서와 관련한 2섬은 독도/Takeshima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Did you understand?
이해가 됩니까?

The Meiji government didn't have clear information about these two islands - Takeshima and Matsushima (or Argonauto island and Dagelet island), so they needed to survey the area around Ulleungdo. They surveyed the area in 1880 and got clear information.
메이지 정부는 2섬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 죽도와 송도(또는 아르고노트와 다즐레), 그래서 그들은 울릉도 주위지역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죠.
1880년에 그 지역을 조사해서 명확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Posted by: pacifist| Tuesday, August 08, 2006 at 01:15 PM

조선국교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 1869~1870, 일본외교문서 제3권)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에 대한 토론내용입니다. 우선, 문서내용을 살펴 보죠.
 

一.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

此儀松島ハ竹島ノ隣島ニチ松島ノ儀ニ付是?揭載セシ書留モ無之. 竹島ノ儀ニ付テハ元祿度後ハ暫クノ間朝鮮ヨリ居留ノ爲差遣シ置候處當時ハ以前ノ如ク無人ト相成竹木又ハ竹ヨリ太キ?ヲ産シ人參等自然ニ生シ其餘漁産モ相應ニ有之趣相聞ヘ候事.
一. 竹島와 松島가 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始末.

이 건은 松島는 竹島의 이웃한 섬으로서 松島의 건에 付해서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도 없다. 竹島의 건에 付해서는 원록연간 이후는 잠시 조선으로부터 거류를 위해 사람을 시켜 보낸 바 있다. 당시는 이전과 같이 無人으로 되어 있다. 竹木 또는 竹으로부터 큰 갈대가 자라며 인삼등이 자연으로 난다. 그 밖에 漁産도 상응하여 있다고 들었다.

 pacifist씨는 일본 메이지 정부의 독도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와 명칭 상의 혼동이 있었다는 이유로 위 문서상 松島는 독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죽도인 울릉도와 송도인 독도가 조선에 부속한 섬임을 밝혔습니다.
이 문서는 일본 메이지정부(明治政府)가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신정부를 수립한 직후인 1869년 12월, 조선과의 국교 확대 재개와 정한(征韓)의 가능성을 내탐하고자 일본 외무성 고위관리인 사다시로가야(佐田白茅)·모리야마시게루(森山茂)·사사이토사까에(齋藤榮) 등을 부산에 파견합니다. 이들이 내탐결과를 보고한 복명서(復命書)가 바로'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입니다. 일본 태정관의 지시사항으로 시행된 조사에 응한 보고서이죠.

佐田白茅/岸田吟香/松田敦朝 작 '(改訂新鐫)朝鮮全圖'가 있으나, 지도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 지도에는 분명 竹島와 松島가 한국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리라 추측된다. 일본에서는 현재 일본인이 그린 조선의 지도 중 울릉도를 우산도로 표기하는 등, 극식한 혼동을 보이는 지도들만 공개하고 있다. 하루빨리 독도의 자유로운 연구를 위한 자료공개가 요구된다.(^^ 뭐, 일본에 좋을 건 없습니다.)

 pacifist씨는 본문에서의 죽도와 송도가 오늘날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합니다.
우선 죽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없이 '울릉도'가 됩니다. 원록 연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분명 안용복의 활동으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조선영토임을 확인받은 '竹島 1件'을 말합니다. 내용설명 역시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군요.
"
竹으로부터 큰 갈대가 자라며 인삼등이 자연으로 난다."라고 했습니다. 옛부터 울릉도의 특산물로 대나무는 유명했으며, 인삼 또한 그 명성이 높았습니다. 울릉도의 인삼에 대한 기록은 영조실록(英祖實錄,  1769年英祖 45年, 10월 14일條)에도 등장합니다.
 

領議政洪鳳漢奏曰 聞鬱陵島産人蔘 商賈潛入採之 倭人若知之 恐有爭桑之患矣. 仍請曰 我國文獻不足 今於鬱陵島事 無所考證 自今博採前後文蹟 作一冊子 以爲事大交隣文字好矣. 上 允之.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아뢰기를, "듣건대 울릉도에서 나는 인삼을 상고(商賈)들이 몰래 들어가서 채취한다고 하니, 倭人들이 만약 이를 안다면, 아마도 쟁상(爭桑)의 근심이 있을까 두렵습니다"하고, 이어서 청하기를, "우리 나라의 문헌이 부족하여 지금 울릉도의 일에 있어 고증할 바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전후의 문적(文蹟)을 널리 채택하여 한 책자를 만들어서 사대·교린의 문자를 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윤허하였다.

18세기 후반, 울릉도에서 인삼이 산출된다는 사실이 국내에 널리 알려져 상인들이 인삼 채취를 목적으로 울릉도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해 12月 9일條에도 삼척영장 홍우보(洪雨輔)가 울릉도에 들어가 인삼을 채취해 온 잠상을 염탐하여 체포했다가 뇌물을 받고 이를 풀어주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몰래 울릉도에 들어가서 인삼을 수십근 채취해 왔다가 발각된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루 미루어 울릉도에 인삼이 자연으로 난다는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의 기록에서 竹島는 명백한 현재의 울릉도입니다.

 문제는 松島입니다. 물론 안용복의 활동에 松島인 于山島가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용복이 일본에 조선령으로 확인받은 영토에 松島가 포함되었다고 인식한 명확한 기록이 바로 1877년 태정관의 지령서입니다.

1877년 10월 3일 태정관의 지령서에는 "元祿 5년 朝鮮人이 入嶋한 이래 舊정부와 해당국[조선]과의 왕복의 결과 마침내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들어 상신한 품의의 취지를 듣고...... 竹島와 外 1島의 건은 본방(일본)과 관련이 없다는 지령문을 내립니다."라고 되어 있죠.

外1島가 명백한 松島임은 이전 글에서 이미 증명했습니다. 일본 최고 의결기관의 공식적인 견해가 안용복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죽도 1건에 外 1島인 송도(독도)가 포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이와 같은바, 사실 더는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pacifist씨가 1870년에 근접한 시기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이 있었던 지도를 제시하는군요. 1867년 가츠가이슈(勝海舟)의 '대일본연해약도(大日本沿海略圖)' 입니다. 영국의 지도를 일본어로 번안한 지도죠.

 이 지도상 竹島는 가상의 섬인 아르고노트,  松島는 울릉도,  '리앙꼬루도 로쿠(リアンコ-ルトロツク)'가 독도입니다.

 먼저, 이 지도와 '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과의 관련성을 살펴 보죠. 문서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竹島가 현재의 울릉도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상 아르고노트인 竹島는 아니라는 것이죠. pacifist씨가 무리하게 이 지도와 문서를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서상 조선에 속한 섬이라는 죽도가 울릉도라면 당연히 송도는 독도가 됩니다.

 이미 수십 번 언급했지만, 일본에서 명칭상의 혼동이 극명하게 보이는 지도는 대개 서양, 특히 영국의 지도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생긴 지도에서 많이 보입니다. 서양의 잘못된 지리적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생긴 오류이죠.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에서는 이러한 혼동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내용설명을 통해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竹島가 울릉도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죠. 만일 이 지도에서와 같은 명칭 상의 혼동이 있었다면 당연히 松島에 대한 설명으로 울릉도를 기술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일본정부 자체에서 울릉도를 송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878년 3월, 1880년 9월 두 차례의 실측조사 이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은 울릉도를 竹島, 독도를 松島라고 지칭했음은 부인될 수 없습니다.

 가츠 가이슈의 지도는 민간의 지도이죠. 일본 메이지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도 일본의 명칭혼동에 대해서는 거론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명확한 공식이 없기 때문이죠. 일본이 울릉도를 松島라고 칭하기 시작한 이후 십수 년 후까지도 일본에서는 竹島와 松島라는 명칭을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키는 섬으로 기록한 지도가 상당수 발견됩니다.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에 대한 부분은 제 home의 이미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지도에 등장하는 죽도와 송도 2섬만이 표기된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표기한 것이라는 사실이죠. 아르고노트 위치에 존재하는 松島에 울릉도라고 주기하거나,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을 적어 놓은 지도가 상당수 발견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일본에서는 잘못된 서양지도를 맹신하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대로 동해상의 두 섬은 울릉도와 독도라고 파악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혼동을 이유로 1800년대 중반 이후의 竹島와 松島가 울릉도와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일본인은 울릉도와 독도로 알고 표기를 한 것이죠.


일본에서의 울릉도 독도 명칭 상의 혼동은 민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달랐습니다. 안용복의 공이 크죠. 안용복의 활동 이후, 일본어부들은 울릉도인 죽도와 독도인 송도에 가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사정을 내부문서를 통해 일본정부는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여기서 한 가지 더 파악할 수 있는 사항이 바로 일본의 독도 명칭 혼동이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안용복의 활동에 독도인 松島가 포함됨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울릉도인 죽도에만 도해가 금지되었다면, 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독도에 대한 명칭혼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메이지 정부의 1877년 태정관 지령서에 '외 1도'인 송도를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했음과 아울러 이러한 명칭혼동으로부터 안용복의 활동에 송도인 독도가 포함돼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거죠.

당시 일본에서의 독도 명칭에 대한 인식을 3가지로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직접적인 어로활동을 했던 시마네현(당시는 돗토리번 소속) 등의 인식입니다. 이들은 정확히 동해상의 2섬이 존재했음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돗토리현이나 시마네현의 고지도, 문헌을 보아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울릉도 근해에서 독점적인 어업권을 가지고 막대한 이익을 행사한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서 명확한 지리적 인식을 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죠. 울릉도와 독도의 형태 오키로부터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왕래하며 조업했던 곳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 역시 독도를 일본령으로 인식한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울릉도 독도 도해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로는 다시 지리적 인식이 희미해집니다.

2. 시마네현 이외의 일본 민간의 경우를 보죠. 이들은 막연히 동해상에 죽도와 송도라는 2섬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물론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역시 울릉도 주민은 우산도가 독도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나, 종종 우산도를 죽도로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던 사실과 필적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각종 문서나 지도를 통해 대강의 내용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도작성을 위해서 관련 역사 기록을 참조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3. 그러나, 일본정부는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정보수집이 용이했죠. 1877년 태정관 지령서가 나올 당시 명확히 일본과 관계가 없는 땅임을 지령한 데에는, 시마네현의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접하고 일본 내부문서를 참조해 竹島와 松島가 과거 '竹島 1건'으로 조선과의 분쟁에서 조선령으로 확정했음을 파악한 것이죠. pacifist씨는 일본 민간과 일본정부를 동일시해서 가츠 가이슈의 혼동을 일본정부에 바로 연결하려 하나 어림없는 소리가 됩니다.

 물론, 메이지 정부내에서 죽도와 송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대하지 못해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 극단적인 상황은 1880년 9월의 아마기함(天城艦)의 송도순시 보고로 끝을 맺습니다. 일본 내 송도개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아마기함의 실측이 실행됩니다. 여기서 어이없게도 해군소위 미우라(三浦)는 松島가 울릉도이며, 竹島가 울릉도 근방의 하나의 암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게 되죠. 일본정부에서 공식적으로 松島라는 명칭을 울릉도에 붙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 하나 있어요. 죽도와 송도라는 명칭이 동해상의 2섬이라는 사실만큼은 일본 민·관 모두 일치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에 등장하는 松島가 어느 섬인지 명칭 상의 혼동이 심각했던 메이지기이므로 특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일본인들이 역사적으로 동해상에 존재한다는 두 섬이 울릉도와 독도인 죽도와 송도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문서내용상 죽도가 울릉도라는 명확한 기술내용이 등장한다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문서상 송도는 독도가 되는 것이죠.

한가지 더하면,
pacifist씨는 조선국교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가 단순한 일본의 내부 보고서라는 주장을 합니다. 물론 wedgie씨께서 바로 적절한 반론을 하셔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보죠. (토론내용중 이 부분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합니다.)

일본외교문서에 실린 '울릉도[竹島]와 독도[松島]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始末(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은 단순한 보고문이 아닙니다.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이 지령한 조사사항이죠. 일단 일본외교문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단순한 보고문 정도의 의미 없는 일본의 내부문서라는 주장은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문서의 확인기관이 외무성과 일본의 국가 최고기관인 태정관이라는 사실 또한 아울러 주목할 필요가 있는 거죠.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메이지기 그들의 침략의도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인 사실로서 울릉도(죽도)와 송도(독도)를 조선영토로서 파악하고 있었음을 이 문서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토론내용이 너무 길고,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은 관계로 pacifist씨의 의견중 논할 만한 내용만 간략히 발췌합니다.



As to the 1870 document, the sentence "此儀ハ 松島ハ竹島ノ隣島ニシテ松島ノ儀ニ付、是迄掲載セシ書留モ無之、" Matsushima is the neighboring island to Takeshima (Ulleungdo), and there has been no documents about Matsushima" explains this "Matsushima" is different from Takeshima/Dokdo because there were numerous documents about that Matsushima (Takeshima/Dokdo) and the island 92 km far away is not a neighboring island.

1870년 문서에 관해서 "此儀ハ 松島ハ竹島ノ隣島ニシテ松島ノ儀ニ付、是迄掲載セシ書留モ無之" "송도는 죽도(울릉도)에 인접한 섬으로 송도에 관한 내용은 문서에 없습니다." 이 송도는 독도와는 다릅니다. 송도(독도), 이 섬은 92km떨어져 있는 섬이 이웃한 섬은 아니기 때문이죠.

송도가 죽도의 인도(竹島ノ隣島)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송도도해면허를 앞둔 1661년 무라까와 와 오다니 가문 사이에 주고 받은 서신에는 왠일인지 같은 부류의 표현이 등장하는군요. 또한 일본지도상 죽도와 송도는 항상 같이 등장합니다. 일본에서는 죽도와 송도를 하나로 묶어 인식했음이 분명한데, 왠 헛소리를 자꾸 하는지!



The origina map of 日本輿地路程全圖 was made in the 1700's and it had revised sometimes after the years. So the island Matsushima in the map is definitely Takeshima/Dokdo but it's a different island from the 1870 document.

일본여지노정전도의 원도는 1700년대에 작성되었고 그 해 이후 얼마간 재판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상 송도라는 섬은 독도가 명확합니다만 1870년 문서에서의 섬과는 다른 섬입니다.

BTW, the writing on the map says "見高麗猶望雲州隠州", the meaning is "Like seeing Izumo county (Japan mainland) from Oki county (Oki island), you can see Korea (from here)" and the sentence was almost similar to the document in the 17th century, which says "Ulleungdo is Japanese boundary."

그런데, 그 지도상 주기는 "見高麗猶望雲州隠州"이며 그 의미는 "오키국(오키섬)으로부터 이즈모국(雲州, 일본본토)가 보이듯이 한국(이곳으로부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울릉도는 일본의 경계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Posted by: pacifist | Wednesday, August 16, 2006 at 12:12 AM 의 발언중 일부

 은주시청합기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미 이전에 은주시청합기의 해석은 여러 가지 근거로 죽도와 송도가 한국령임을 기록한 것임을 증명해 두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곳을 클릭.
일본의 명칭혼동으로 말미암은 지도·문헌자료상 메이지기의 竹島는 아르고노트 임을 강변하자, wedgie씨께서 메이지시기에 등장하는 竹島(여기서는 아르고노트로 추정되는)에 울릉도 혹은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을 적어 넣은 일본지도를 제시합니다. 일본인이 서양지도상 아르고노트를 죽도인 울릉도로 착각하고 지도에 표기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클릭.

 아직 동시기(특히 1870년~1910년까지의 지도)의 일본지도를 일본대학도서관에서 모두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공개한 지도에만도 이런 부류의 일본지도는 상당수에 이릅니다. 그나마 그러한 지도에 대한 세밀한 화면을 제공하는 일본 대학도서관은 거의 없습니다. 포토샵으로 확대 등의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임이 확인됩니다. 오른쪽 지도 2장은 UC버클리 대학 도서관 소장자료로 상세화면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자료가 공개되면 될수록 일본에 불리하군요...^^ 장담하건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본지도는 앞으로도 공개하기 힘들 겁니다. 공개하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심각하게 훼손할 자료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특히 일본인이 그린 조선전도등의 지도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판대일본정도(銅版大日本精圖,佐藤政養, 1867)
명치개정(明治改正) 대일본여지전도(大日本輿地全圖,1871년 9월,官許)

장중일본전도(掌中日本全圖, 1876)

개정 실측조선전도(實測朝鮮全圖, 1894,宗孟寬)

 은주시청합기의 2섬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입니다. 메이지기 아르고노트를 죽도로 착각했는데, 왜 아르고노트와 같은 위치 같은 형태의 섬에 은주시청합기의 구절을 주기 했을까요?(^^)

 위에 언급된 일본여지노정전도 역시 명확하게 한국령으로 기록해 둔 지도입니다. 일본영토로 생각했다면, 한국과 같은 채색으로 일본과 분리할 이유가 전혀 없죠. 100% 지도상 채색이 영유권을 구분하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지도제작상 채색을 달리해 지역구분을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또한 하나의 지도뿐 아니라 수많은 지도에서 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죠.
자세한 지도내용은 이곳을 클릭.



The neighboring island can't be Takeshima/Dokdo because it had not ever claimed by Korea.
이웃한 섬은 한국에 의해 (그 권리가)주장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독도/Takeshima일 수가 없습니다.

As a proof of this, you can see the investigation of Ulleungdo by Korean officer 李奎遠 in 1882. His party found no islands viewing from the top of the mountain, except 竹嶼 (=Jukdo) and 島項(=観音島).
And they reported that Songjukdo 松竹島 (竹嶼) lied just beside Ulleungdo (= today's Jukdo) and its distance from Ulleungdo was 三数十里, that was 1.2~4km, which fit the location of today's Jukdo. They also reported that Usando was Ulleungdo. And they didn't mention Takeshima/Dokdo, they didn't know about the island or they knew it was Japan's territory. Anyway, if japan said that Takeshima/Dokdo was Korean territory in 1880, why didn't 李奎遠 refer to the island in 1882?

이에 대한 증거로서, 당신은 1882년 한국의 관리인 이규원에 의한 울릉도 검찰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일행은 산 정상에서 죽도(Chukdo, 댓섬)와 도항(島項)이외에는 어느 섬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고서에 송죽도는 울릉도 바로 곁에 있으며, 울릉도로부터의 거리는 3수십리, 이것은 1.2~4km에 해당됩니다. 오늘날의 죽도의 위치와 같습니다. 그들은 또한 보고서에 "우산도는 울릉도이다." 라고 썼어요. 그리고 그들은 독도/Takeshima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그 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거나 일본의 영토라고 알고 있었던거죠. 어쨌든, 만일 일본이 1880년에 독도/Takeshima가 한국의 영토였다고 했을지라도, 왜 이규원은 1882년에 그 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이 발언에서는 pacifist씨의 왜곡된 자료해석의 극치를 보여줍니다.(pacifist씨 역시 왜곡 성향으로 보아 일본인일 가능성이 90% 이상.^^ 곳곳에 일본식 한자가 보입니다.)

이규원의 검찰일기에 등장하는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을 다시 발췌해보죠.(李奎遠 鬱陵島 檢察 啓本草 1882년 5월 13일)

松竹于山 等島 僑寓諸人 皆以傍近小島 當之 然旣無圖籍之可據 又無鄕導之指的 晴明之日 登高遠眺 則千里可窺 而更無一拳石一撮土 則 于山之稱鬱陵 卽如耽羅之稱濟州是白如乎

松島, 竹島, 于山島 등은 그곳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당연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거할만한 지도나 문적도 없고, 또 가르쳐 줄 안내자도 없어, 청명한 날에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살펴본즉  일천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또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었으니 이는 곧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이규원은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독도인 우산도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산도를 울릉도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하여 울릉도에 소속된 섬으로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성인봉에서 1년에 독도를 볼 수 있는 날은 대략 30일 정도죠.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처럼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청명한 날이면 목격이 됩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은 청명한 날에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죠. 단지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죠. 대신 우산도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함으로써, 그가 이전 일기에서 관음도를 島項, 죽도를 竹島라고 표현한 것을 감안한다면, 우산도는 독도임을 명백히 하고 있는 글입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우산도를 울릉도로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로 칭하는 것과 같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을 하는 진짜 이유는 그 자신이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의 자신의 실수때문입니다. 그 실수가 울릉도에 실지로 도착해 조사해본 후, 바로 잡힌 것이죠.

조선 초기까지의 제주도의 명칭이 탐라였습니다. 그 옛 명칭을 이규원이 울릉도를 검찰하던 동시기까지 제주도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었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산도는 울릉도의 옛 명칭이었죠. 우산도는 엄연히 울릉도의 부속섬인 독도에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규원은 이 우산도가 울릉도의 명칭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다음 pacifist씨의 발언은 왜곡의 극치를 달립니다. 이전에 인죠이 재팬 elseorand씨에게 오류를 지적해 준 내용인데, 그와 같은 왜곡된 내용을 계속 써먹고 있군요.

그럼, 이규원이 고종황제와 문답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高宗實錄 高宗 19年(1882년) 4月 初 7日(승정원 일기 같은 날짜 기록은 고종실록기록과 거의 일치함)
원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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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을 소견하였다. 하직인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울릉도(鬱陵島)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상(無常)으로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네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골라서 임명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고을(邑)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지에다가 자세히 적어 보고할 것이다."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 우산도(芋山島)는 바로 울릉도(鬱陵島)이며 우산(芋山)이란 바로 옛날의 나라 수도[國都]의 이름입니다. 송죽도(松竹島)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鬱陵島)와 떨어진 거리는 3수십리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檀香)과 담뱃설대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하교하기를, " 우산도(芋山島)라고도 하고 송죽도(松竹島)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松島)·죽도(竹島)라고도 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鬱陵島)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볼 것이다. 울릉도(鬱陵島)는 본래 삼척 영장(三陟營將)과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면서 수색․검열하던 곳인데 거의다 소홀히 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을 가져왔다. 너는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松島)와 죽도(竹島)는 울릉도(鬱陵島)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松竹島)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하교하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라고 하니 규원(奎遠)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대체적인 내용을 얻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1882년 4월 7일.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의 기록입니다. pacifist씨는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마친 후에 그런 사항을 보고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군요. 그의 실제 보고내용은 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에 등장하듯,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내용입니다.

이규원은 위의 기록에서처럼 고종황제를 알현한 당일 1882년 음력 4월 7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4월 30일 울릉도에 도착해서 울릉도 검찰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 자신이 고종황제에게 울릉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아뢴 일을 깨닫고 5월 13일 자 일기에 변명을 하는 것이죠. 결국 위 고종실록 기사를 보건대, 고종황제의 견해가 옳았던 겁니다. 한마디로 이규원으로서는 조금 쑥스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pacifist씨가 또 하나 왜곡한 것은  "Its distance from Ulleungdo was 三數十里, that was 1.2~4km" 이 발언입니다. 뭐, 왜곡이라기보다는 정확한 기록을 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원문에서는 三數十里로 1里를 420m로 보았을 경우, 12.6km이상이 됩니다. 평이하게 1里를 400m로 계산해도 三數十里는 12km 이상이 됩니다. 도대체 어떤 계산에 의해서 1.2~4km가 된다는 것인지? 아마도 3~10里라고 해석하는 왜곡의 극치를 보이는 듯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군요....)

 고종실록은 일제강점기 편찬된 실록입니다. 그래서 보통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할 때, 고종실록은 포함을 시키지 않죠. 왜곡이 심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럼, 여기서 1里를 일본식으로 계산해 볼까요? 일본식 1里는 4km입니다. 그럼, 三數十里 120km 이상이 됩니다. 실제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는 87.4km이죠. 이렇게 되면 이규원이 말하는 송죽도가 독도일 가능성도 생기는군요. 이건 그냥 재미삼아 계산해 본 겁니다. 여하튼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 이규원의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호칭과 지리적 인식은 정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검찰에 임해서 울릉도와 우산도는 다른 섬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종실록 국역본에는 '三數十里'를 20~30里로 번역했군요. 이에 맞추어 계산해 보면, 일본식 1里를 적용해서 80리~120里로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실제거리(87.4km)와 정확히 일치됩니다.(그러나 이 해석은 저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네요. "30여 리"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독도에 대한 진실을 논하는 데에 일본 측은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외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죠. 때에 따라서는 자료해석을 마음대로 왜곡하는 일도 있으며, 너무도 뻔한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죠. 그러다 보니 상식 이하의 논리를 구사하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자료 자체를 왜곡합니다.

안용복의 기록이 일본에서 발견된 사례를 한번 간단히 보죠.


‘원록 9 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오키섬의 무라카미 가문에 전승된 안용복 일행 조사보고서입니다. 조선 8道의 명칭이 나열돼 있으며, 江原道 밑에 "此道中竹島松島有之(이 道 안에 죽도와 송도가 있다.)" - 누가 봐도 뻔하게 강원도에 대한 주기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무리하게 此道中을 此途中(이 도중에)로 해석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한마디로 어이가 없죠.)

 wedgie씨의 독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찬미하고 pacifist씨의 투철한 왜곡정신을 성토하며 오늘은 이상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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