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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Gerry-Bevers와의
토론내용이 실린 게시판
Gerry-Bevers가 그의 의견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새 글을 올립니다. 우선, 의견을 수정했다는 것은 이전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죠.
이전 그의 주장과 아래
고종실록 등의 원문내용은 이전
글을 참조
그럼, 어떻게 수정이
됐는지 알아보죠. 영문은 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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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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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의 검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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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島 于山島=
관음도 = 도항(島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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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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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島 于山島=
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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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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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島 = 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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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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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의 검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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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島 = 于山島, 관음도
= 島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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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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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島 = 于山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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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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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島 = 울릉도 주위의
작은 바위섬을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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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의견을 수정했다는 것은 이전 자신의 주장의 허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죠. 따라서 현재 수정한 의견 역시 언제 또 바뀔지 모릅니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죠. 필요에 따라 또 바뀔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이
왜곡 또한 박살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1.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의 石島가 울릉도 주위의 작은 바위섬들을
통칭했다는 견해에 대해서.
이 의견이 나온
결정적인 이유는 石島와 관음도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할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울릉도에 거의 붙어있다시피한 섬을 대한제국 정부에서
특별히 울도군의 영역에 포함한다고 고시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또,
관음도는 사실 돌섬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어요. 나무도 꽤 자라고
있으며, 섬 전체가 풀로 덮여 있습니다. 일정부분이 풀로 덮여있는 섬을 돌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관음도는 한눈에 보아도 섬의 절벽 이외에는 섬 전체가
풀과 나무로 덮여 있어서 돌섬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여하튼 Gerry-Bevers는
石島를 관음도로 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石島가 울릉도
주위의 작은 바위 섬을 통칭한다고 했습니다.
토론 중에 제가
石島라는 단어는 보통 복수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음을 지적했습니다.
한국 기록 속에는 石島가 Gerry-Bevers가 이야기하듯, 수십 개의 바위섬을
통칭해 기록한 사례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우리 기록을 찾아본 결과,
그런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나의 돌섬(여러 암초가
군집을 이루는 경우, 하나의 개체로 인정한 경우를 포함)을 호칭하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대한제국
정부에서 풍천군수에게 내린 대한제국 칙령 제41조가 내려진 비슷한
시기의 훈령 제1호와 8호에서 역시 石島는 하나의 섬으로 기록하고
있더군요. 石島는 보통 일반명사로 쓰이나, Gerry-Bevers가
주장하듯 울릉도 사방에 산재한 수십 개의 바위 섬을 호칭하는 일반명사로 쓰일 수는 없습니다.
독도와 같이 많은 바위가 군집을 이룬 바위들을 하나의 개체로 다루어 石島(돌섬)라
이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와 같이 주위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바위가 흩어져 있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訓令 一號 |
| 光武六年三月二日(1902년 03월 02일) |
| 발신자; 內藏院卿 李容翊
수신자 ; 豐川郡守 丁憙燮 座下 |
本郡草島石島所在牧馬九十二匹數爻는 業經査檢冊子 而島民呼訴中의 牧馬生弊가 不些
다는 緣由를 不得已 捉馬上來次로
訓飭本郡 며 派送朴在根矣러니 現에 兒馬二十一匹만 來納本院故로 査覈事實 則渠之所供內에 該兩島에셔 二十匹을 任自私賣
고 三匹은 該郡市民處에 放賣 고
十匹은 鄕長首書記와 使令廳과 姓不知德順輩가 討索見奪云 니 該漢所爲도 萬萬無嚴커니와 該郡擧行이 極爲痛歎故로 玆庸發訓
니 令到卽時에 上項諸漢을
捉囚郡獄 고 盜賣馬數를 一一査櫛督捧 야 定巡校押送이되 莫重國馬를 毋至閪失케 되 令申之後에 不遵院飭이면 責有所歸矣리니 凛遵毋誤
믈
爲要. 草島, 石島 소재 목마(牧馬) 92필
수효(數爻)는 이미 책자로 조사되어 있는 중에, ‘목마(牧馬)의 폐단이 적지 않으니
말을 올려 보낼 일로 풍천군에 훈칙하여 박재근을 파송해 달라’는 섬 주민의 호소가 있었으나, 현재 아마(兒馬) 21필만 내장원에 올라 왔기 때문에 사실을
조사해 보니, 해당 두 섬에셔 24필을 사사로이 몰래 팔도록 했고, 3필은 해당 군의 주민에게 방매(放賣)했고, 10필은
향장수 서기(鄕長首書記), 사령청(使令廳), 성을 모르는 덕순(德順)이라는 자가 토색하여 탈취해 갔다고 하니 훈령을 받는 즉시 죄인들을 郡의
감옥에 수감시키고 훔쳐서 판 말의 수를
모두 조사, 추징하여 순교(巡校)를 정해 올려 보내되, 훈령을 보낸 이후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국가의 말을 흐지부지 유실하게 되어 내장원의
신칙을 따르지 아니하면 책임을 묻겠으니 철저하게 좇아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을 필요로 함.
內藏院卿 李容翊 豐川郡守 丁憙燮 座下 光武六年三月二日 |
내장원경※
이용익(李容翊)이 풍천군수에게 초도와 석도에서 목장의 말을
몰래 판매한 자를 압송하고 그 상황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훈령으로
훈령 8호에서도 石島가 하나의 섬으로써 묘사돼 있습니다. 여기서의
石島는 석도(席島) 혹은 석암(席岩)으로 표기되어 온 황해도 연안의 섬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황해남도 과일군 席島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장원경
이용익은 이 섬이 돌이 많은 섬이라는 의미에서 石島라 호칭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어떤 기록에서도 石島를 울릉도 사방의 수십 개의 작은 바위 섬을 모두
포함하는 것과 같은 광범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군집을 이루는 수십의 바위를 하나의 개체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입니다. 사방에 섬이 산재되어 있는 울릉도의 경우와는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
내장원경(內藏院卿) 조선 후기 왕실의 재산인 전토(田土)·미포(米布)·전화(錢貨)를
관리한 관청인 내장원의 경(卿:勅任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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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도(연도
미상) 海西道(황해도)의 席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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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도(19세기
초) 황해도 지도의 席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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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하에서 대한제국
칙령에서의 石島를 Gerry-Bevers처럼 울릉도 주위의 바위섬을 통칭했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되는 것이죠.
대한제국 칙령에서의
石島가 과연 어떤 섬일까? 이미 모두 잘 알려져 있듯이 석도는 돌섬으로, 당시
울릉도에 많이 건너와 살고 있던 전라도 사람들이 사투리로 독섬으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石島나 獨島로 표기했습니다. 이미 많은 한국의 학자들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신용하 교수님께서 이와 같은 용례를 자세히 파악했습니다.
독도’, ‘독섬’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아직
한자표기를 정하지 못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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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소속된 지방 행정구역 |
'한국지명총람'의 설명문 |
자 료 |
독 도 |
섬 |
경남 統營郡 龍南面 花三里 |
애기섬 남쪽에 있는 섬 |
'총람' 10, p.193 |
독 섬 |
섬 |
전남 高興郡 過驛面 蓮燈里 |
불무섬 가까이에 있는 섬. 돌이 많음. |
'총람' 13, p.111 |
독 섬 |
섬 |
전남 高興郡 東江面 支竹里 |
芝湖 서쪽에 있는 섬. |
'총람' 13, p.140 |
독 섬 |
섬 |
전남 高興郡 東江面 掌德里 |
대섬 동쪽에 있는 섬. 돌이 많음. |
'총람'
13, p.144 |
독 섬 |
섬 |
전남 高興郡 蓬萊面 泗洋里 |
솔섬 북쪽에 있는 섬. 돌로 되었음. |
'총람' 13, p.151 |
독 섬 |
섬 |
전남 長興郡 夫山面 會鎭里 |
탱자섬 북쪽에 있는 작은 섬. 온 섬이 돌로 되었음. |
'총람' 15, p.478 |
'독'을
'石'으로 의역(意譯)해 표기한 地名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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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한자표기 |
소속된 지방 행정구역 |
'한국지명총람'의 설명문 |
자 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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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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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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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 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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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城郡 文德面 雲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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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 동남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근처에 돌이
많음. |
'총람' 14,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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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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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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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 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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務安郡 淸溪面 月仙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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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골 북쪽에 있는 마을 |
'총람' 14, p.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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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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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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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石里
|
寶城郡 蘆洞面 擧石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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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217 |
|
독 살
매
|
마을
|
石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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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安郡 安佐面 香木里
|
향목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총람' 14, p.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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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산
|
마을
|
石山洞
|
新安郡 智島面 蟬島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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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계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부근에 돌이 많았음. |
'총람' 14, p.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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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매
|
마을
|
石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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務安郡 三鄕面 旺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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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동쪽에 있는 마을. 돌이 많음. |
'총람' 14, 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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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살
매
|
산
|
石 山
|
新安郡 安佐面
|
안좌면
향목리와 영흥리와 존포리에 걸쳐 있는 산. 돌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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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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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고
개
|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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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 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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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安郡 安佐面 大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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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골
북쪽에 있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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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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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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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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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峙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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莞島郡 古今面 駕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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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상리
복판에 있는 마을. 돌이 박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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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5, p.300 |
|
독 배
기
|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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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田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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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津郡 道岩面 龍花里
|
용정 동쪽에
있는 들. 돌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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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3, p.55 |
|
독 트
미
|
마을
|
石間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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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城郡 會泉面 郡豊里
|
당산 동쪽에
있는 마을. 큰 돌더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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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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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다
리
|
마을
|
石橋里
|
康津郡 郡東面 石橋里
|
돌다리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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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3, p.33 |
|
독 다
리
|
마을
|
石橋里
|
海南郡 門內面 石橋里
|
돌다리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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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6,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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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다
리
|
마을
|
石橋里
|
珍島郡 臨淮面 石橋里
|
석교 남쪽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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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6,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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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다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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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
石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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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興郡 長東面 北橋里
|
송천 앞에
있는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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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5, p.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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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다
리
|
다리
|
石 橋
|
海南郡 山二面 松川里
|
됫등 남쪽에
있는 다리. 돌로 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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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6,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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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다
리
|
다리
|
石 橋
|
寶城郡 筏橋邑 池洞里
|
구정지
아래에 있는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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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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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다
리
|
다리
|
石 橋
|
寶城郡 德糧面 正興里
|
지지기
논 아래에 있는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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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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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다리골
|
들
|
石橋坪
|
長興郡 安良面 堂岩
|
돌다리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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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5, p.492 |
'독'을
'돌'이라는 뜻으로 가지면서 한자(漢字)표기가 없는 지명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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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소속된 지방 행정구역 |
'한국지명총람'의 설명문 |
자 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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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골
|
들
|
長興郡
長興邑 向陽里
|
도내기 동쪽에 있는 들. 돌이 많음. |
'총람' 15, p.572 |
|
독 골
|
골
|
長興郡
長東面 萬年里
|
가작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돌이 많음. |
'총람' 15, p.531 |
|
독 당
골
|
골
|
新安郡
荏子面 三頭里
|
저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독담(돌로 하는 가장)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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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람' 14, p.514 |
|
독 실
|
골
|
新安郡
墨山面 可居島里
|
대북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돌이 많음. |
'총람' 14, p.559 |
|
독 실
산
|
산
|
新安郡
墨山面 可居島里
|
독실 위에 있는 산. |
'총람' 14, p.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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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배
기
|
마을
|
務安郡
夢灘面 九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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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 아래 있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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