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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ry-Bevers의 독도소설을 비판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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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Gerry-Bevers의
글이 실린 게시판(Gerry-Bevers의 2007.04.26일 작성글의 논평) 바로가기
Gerry-Bevers는 위 지도에서의 于山島는 현재의
댓섬인 죽도(Jukdo)를 나타내는 지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죠. 그러나 이건 이들의 단순한 희망에 불과합니다. 이미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1899년 황성신문의 기사와 거의 동시기 일본 측 기록인 조선개화사(1901)에서는 울릉도의 부속한 섬으로써 우산도와 죽도를 다른 섬으로써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 참조 이규원의 검찰 일기에서 역시 우산도와 죽도를 다른 섬으로써 나란히 열거하고 있죠. 따라서 조선후기 지도에서의 우산도는 죽도가 될 수 없습니다. Gerry-Bevers는 이전 토론에서 심흥택의 보고서에서의 독도라는 명칭을 부정했죠. 그의 보고서에서 독도를 울릉도에서 100여리 떨어진 섬(本郡所屬 獨島가 在於 外洋 百餘里 外이살더니) 이라고 언급한 것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100여 리는 약 40km이상으로써,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실제거리인 87Km와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완벽한 Gerry-Bevers의 왜곡입니다. 울릉도에서 40km이상 떨어진 섬이 죽도가 될 수는 없죠. 죽도는 울릉도에서 바로 목격이 되므로, 그 거리를 울도군수인 심흥택이 정확히 알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100餘里(100리 이상)밖에 있다는 현재의 독도임은 너무도 명확하죠. 또한, 일본 해군의 기록에서 심흥택의 보고서가 나온 2년 전인1904년 당시 한인(韓人)들은 리안쿠르트 락스를 獨島라고 부른다는 엄연한 기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본해군의 군함신고행동일지(軍艦新高行動日誌) 이에 비추어 보면 Gerry-Bevers는 독도연구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독도라는 명칭까지 현재의 독도가 아니라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완벽하게 한쪽으로 편향된 객관성을 잃은 모습입니다. 따라서 독도연구가가 아닌 소설가라고 할 수밖에 없죠. C지도;(강원도도,帖삽역지도, 19세기 후반)를 볼까요? 이 지도에서 울릉도는 한반도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Gerry-Bevers는 심흥택의 보고서에서의 독도거리표기가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보고서상 獨島는 죽도(Jukdo)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리를 이 지도에 그대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도에서의 울릉도 역시 현재의 울릉도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거리와는 너무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한반도 바로 옆에 울릉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지도에서의 울릉도가 현재의 울릉도임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Gerry-Bevers가 이 지도에서의 울릉도를 현재의 울릉도로 수용한 것은 명칭이 동일하고 동해상에 존재하는 이렇게 큰 섬은 울릉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Gerry-Bevers는 이렇게 울릉도가 한반도에 실제보다 터무니없이 가깝게 그려진 점은 무시하고 울릉도와 우산도의 거리만을 문제 삼아 지도에서의 우산도가 죽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진(1963년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재편)~울릉도까지의 실제거리가 약 130㎞로 이에 비교해 울릉도와 우산도와의 거리를 볼 때 지도상의 우산도는 도저히 죽도(Jukdo)로 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제 울릉도~독도까지의 거리와 유사합니다. 울릉도에서 불과 약 2km떨어져 있는 죽도(Jukdo)라면 당연히 지도에서는 생략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지도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한다면 거리표기나 위치상의 문제를 이유로 우산도를 죽도라고 하는 어리석은 견해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자신의 소설을 위해 필요에따라 마음대로 정확한 거리를 요구하기도 하고, 반면 자신은 이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죽도는 울릉도에서 약 2km 떨어져 있으며, 독도는 약 87km 떨어져 있습니다. 심흥택이 그 거리를 40km(100里)이상으로 묘사했다면, 그 섬은 당연히 현재의 독도입니다. 명칭까지도 현재와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도 일본 극우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하튼 그는 강원도도에서 역시 자신이 편리한 대로 이중적인 잣대로써 독도의 역사를 마구 편집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우측 중간 우산도 위에 東洋中日本諸島(동양 중 일본 諸島)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Gerry-Bevers는 이 문장을 마치 지도의 우산도를 설명한 것처럼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울릉도와 우산도 우측의 동쪽 해양에 일본의 제도(諸島)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조선의 지도에 무엇 때문에 일본의 섬을 표기했다는 것인지 너무도 우습네요. Gerry-Bevers는 한국의 고지도(古地圖)도 못 봤나 봅니다. 언제나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 지도의 제작자가 우산도를 일본의 섬으로 봤다는 것인지 너무도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소설을 쓰고 있네요. 제도(諸島)라는 말에 주목해 보죠. 諸는 '여럿, 모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Gerry-Bevers의 의견대로 이 문구가 우산도가 일본령임을 표시한 글이라면, '諸'자로 인해 울릉도까지 함께 일본령으로 기록한 것이 되죠. 무엇 때문에 일본령으로 인식한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을 조선지도에 표기를 했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울릉도는 조선에서뿐 아니라 일본에서조차도 모두 조선령으로 기록했으며, 이 지도는 양국 정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영토로 확인한 '죽도 1건' 이후의 지도입니다. 당연히 울릉도를 조선령으로 본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이 문장이 우산도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는지 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이군요. 한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일본 극우세력이 넘겨 준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東洋中日本諸島(동양 중 일본 諸島)"라는 주기는 울릉도와 우산도 동쪽에 일본의 여러 섬이 존재한다는 설명입니다. Gerry-Bevers의 이렇게 바보스러운 해석은 일면 일본에서 그를 치켜 세워주니 이에 부응하기 위한 그 나름의 노력이라고도 보입니다. 어찌 보면, 참 안타깝네요. 일본에서 그를 자꾸 치켜세워 주니 그 호의를 배신할 수도 없고, 독도가 일본령으로 표기된 과거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니, 전근대사회인 조선의 자료를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러나 전근대사회는 말 그대로 근대화되기 이전의 사회라는 뜻으로 봉건적인 요소가 남아 있던 시기죠. 서구의 과학적인 지리도구 및 인식이 채 도입되기 전의 사회로써, 이 때의 지리적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마땅히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Gerry-Bevers는 이런 점은 완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일본에서의 자신의 명성을 잃기가 싫은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의 한 신문기자가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더군요.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한 서양인이 동양의 신문기자와 인터뷰까지 했으니, 마치 자신이 독도에 능통한 학자 정도로 여겨졌을 겁니다.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지지하는 한국 내 외국인을 그 일본의 신문기자가 얼마나 치켜세워 주었을지 눈에 선합니다. Gerry-Bevers는 그런 명성을 잃고 싶지 않은 거죠. 도대채 독도가 1905년 이전 일본령으로 기록된 자료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모두 한국령으로 기록했어요. 그럼, 당연히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은 독도를 한국으로부터 빼앗았다는 방증이 될 뿐입니다. D지도; 조선국세견전도(朝鮮國細見全圖,染崎延房,1873)입니다.
조선국세견전도를 제작한 소메자끼노부후사(染崎延房,1818∼1886)는 원래 대마도 출신으로서 에도(江戶)에 올라가 작가로 활약하던 사람입니다. 이 지도 하단의 문구를 보죠. 울릉도에 관한 설명이
나와 있고, 이 발문(跋文) 제일 뒷부분에서 그는 지도의 내용을 자세히 알려면 부록 "朝鮮事情" 두 권을 읽으라고 했습니다.※아래 글은 독도본부에서
"조선사정"의 글을 인용해 조선국세견전도를 설명한 글입니다.
즉, 조선국세견전도는 조선의 이전 지도와 대마도에 전해오던 조선지도를 참고해 그린 지도입니다. 분명, 우산도가 울릉도 남쪽에 표기되어 현재의 죽도가 아닌 독도임이 증명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울릉도 밑에 于山島가 그려진 조선지도를 보고 그 두 섬이 일본에서 알고 있던 竹島와 松島라고 판단해 그린 지도로 보입니다. Gerry-Bevers는 지도 아래 쓰여진 문구에 울릉도만 설명이 돼 있고, 지도에 그려진 우산도가 빠져 있다는 이유로 은근 슬쩍 지도에 그려진 우산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죠. Gerry-Bevers의 말대로면, 그 텍스트에 당연히 조선의 모든 섬의 명칭이 쓰여져 있어야 조선령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조선의 지도에 분명히 우산도가 등장하는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울릉도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섭(三涉)은 삼척(三陟) 울릉도를 설명한 문구 바로 오른쪽에는 濟協(제주도)·南海島·巨濟島 3섬을 설명하고 있는데, 3섬 모두에서 그 주변에 딸린 섬은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논리대로면, 제주도·남해도·거제도에 딸린 섬 모두가 조선령이 아니라는 주장이 되네요.
뭐, 별다른 근거 없이 이 지도를 부정하다 보니, 마땅한 논리를 구성할 수 없어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가지 그의 엉뚱한 소설가로서의 상상이 엿보입니다. 즉, 울릉도의 둘레를 9백4,50里로 표현한 글을 핑계로 1873년 당시 울릉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일본에서 가지고 있지 않았고, 다만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이 동해에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는 군요. 따라서 이 지도는 구식으로 당시 일본에서의 울릉도와 우산도 주위의 인식을 표명해 주는 지도가 아니라는 거죠. Gerry-Bevers가
발문 중 울릉도 부분을 해석한 글을 보면, 주회(周廻)가 "九百四五十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에서의 九자는 凡자의 이체자 따라서 "九百四五十里"는
凡百四五十里입니다. 약 1백4,50里로 현재의 거리로 환산하면 약 56~60km(실제
울릉도의 둘레;56.5km)가 되어 너무나 정확한 울릉도의 둘레가 됩니다. 위의
제주도·거제도·남해도의 설명이 실제와 크게 다른 것과는
달리 울릉도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정확합니다. Gerry-Bevers의 상상과는 달리 소메자끼노부후사(染崎延房)의 울릉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뚜렷했군요. 당연히 于山島에 대한 染崎延房의
인식 역시 분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染崎延房는 이 지도에서의 우산도의 위치를 울릉도의 밑에 수정해 그려넣었습니다. 좀 더 정확한 우산도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었죠. 그리고, 고맙게도 울릉도에 "日本ニテハ是ヲ竹島ト云(일본에서는 이 섬을 竹島라고 한다)"라는 문장을 주기했습니다. 즉, Gerry-Bevers가 거품을 물며 주장하는 "우산도= Jukdo"라는 소설이 '조선국세견전도'에서도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는 셈이죠. 이렇듯, Gerry-Bevers는 자신의 상상만으로 무리하게 진실을 왜곡하려다 보니, 한일 양국의 자료와는 상반된 상식이하의 소설을 자꾸 쓰게 되는 거죠. 9백 4,50里는 376km~380km입니다. 지도를 보면, 너무도 쉽게 오기이거나 자신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참 어이가 없군요. 위 지도에서 울릉도의 둘레가 어디를 봐서 400km에 가깝게 표기가 되어 있다는 것인지! 참고로 서울~부산까지의 거리가 456km입니다. Gerry-Bevers의 눈으로는 조선국세견전도에서의 울릉도의 둘레가 400km에 가깝게 보이나 봅니다. 아무튼, 그는 소설가 중에서도 공상과학소설을 쓰는데 가장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네요. 물론 이상과 같은 이러한 그의 어리석은 왜곡은 어떻게든 일본 극우의 입맛을 맞추고자 왜곡하는 과정중에 생긴 것이죠. Gerry-Bevers는 또, 당시 조선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지도가 조선의 일반적인 지리적 인식과는 무관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국세견전도'는 1890년 8월 National Geographic 제2권 4호에 소개된 조선지도(Korea)와도 우산도의 위치가 유사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두지도 모두 조선의 지도를 그 밑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조선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조선의 지도를 소개했다면, 당시 가장 일반적인 조선의 지도를 참조해 그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위 지도에서의 우산도는 독도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국세견전도와 같이 于山島를 울릉도 아래 표기한 조선의 지도 조선국세견전도와 같이 于山島를 울릉도 아래쪽에 그려넣은 조선의 지도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조선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죠. 아래 지도중 여지도는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그 근간으로 제작된 지도로써 여러 면에서 조선국세견전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울릉도와 우산도를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Jukdo)가 아닌 독도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래 조선의 지도들은 대개 목판본으로 제작되어 조선에 폭넓게 소개된 지도들입니다. 대개의 경우 조선전도에서는 우산도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상세도인 개별도에는 우산도를 표기해 조선령임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울릉도 아래쪽에 우산도를 그려넣은 일본지도로써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 1876)가 있습니다. 이 지도를 그린 카시하라 요시나가(樫原義長)의 같은 해 '장중일본전도(掌中日本全圖, 1876)'에서는 우산도가 송도로 대치되어 있어, 당시 일본에서 역시 우산도가 독도(일본명 松島)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팔도도는 이곳을 클릭 아래 지도는 청조일통지도(淸朝一統之圖, 1835, 작자미상)라는 일본의 지도입니다.
울릉도와 자산도(子山シマ, 于山島)를 강원도 옆에 그려넣고, 이와는 따로 竹島(竹シマ)와 松島(松シマ)를 동해상에 표기했습니다. 작자는 울릉도가 竹島이고, 우산도가 松島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 죽도와 송도의 위치가 실제와는 많이 다르고 일본령에 근접하게 그려 넣었죠. 그러나 죽도(竹島)와 송도(松島)를 조선과 같은 채색을 해서 조선령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竹島와 松島를 어느나라 영토로 인식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Gerry-Bevers의 글 첫머리에 산인 역사관의 울릉도지도를 누군가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그의 희망을 피력했더군요. 물론 그가 일본의 울릉도 지도를 원하는 것은 이 시기 일본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에서 실효지배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산인 역사관의 울릉도 지도는 아래의 죽도도설에 실려있는 죽도지도(竹島之圖)입니다. 일본에서의 울릉도 지도는 상상외로 많으며, 그 지도의 정확성 역시 높습니다. 이 지도들은 모두 1625년부터 1696년까지 약 70여 년간 무라까와·오오야 두 가문이 울릉도에 건너가 어업을 경영하면서 실질적인 어업상의 필요에 따라 제작된 것입니다. 지도에서는 울릉도 해안가 각종 포구의 명칭과 주위 바위섬에 대한 정보, 심지어는 절벽의 높이까지 자세히 기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 내륙에 대한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죠. 이것은 당시의 일본인들이 울릉도 주위에서 어로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 지도를 제작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죽도지도(竹島之圖)
A. 죽도도설 왼쪽 지도 좌측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自隱岐國七十里而有此島。俗號竹島是也。島之廻リ大槪*十六里有大河。*본문에서는
槪의 이체자 오키로부터의 거리는 70리, 약 280km로 실제거리인 약 254km와 큰 차이가 없으며, 섬의 둘레는 16리, 약 64km로 실제 울릉도 해안선의 길이인 56.5km와 유사합니다. B. 관음도; 파란 원 안의 섬이 관음도로써, 관음도와 섬 사이의 거리를 此間瀨戶三十間斗。廻り十四五丁。(이 사이의 뇌호는 30間斗이며 섬의 둘레는 14,5丁이다)이라 적혀 있습니다. 瀨戶(뇌호)는 섬과 육지사이 여울의 거리를 뜻하는 말로 30間斗(1間=1.8181m)는 약 54.543m(실제 육지와 관음도의 거리는 약 100m)가 됩니다. 섬의 둘레룰 14,5丁(1丁=1町=109m), 약1.526~1.635km(실제 둘레 약 800m)로 표기했습니다. 죽도; 붉은 원 안에 있는 섬이 현재의 댓섬인 죽도(Jukdo)로써 本島ヨリ十五丁斗廻リ十八丁(본도에서 15丁거리에 있으며, 둘레가 18丁) 이라 적혀 있습니다. 울릉도 본도부터의 거리가 15丁(약 1.635km)으로 실제거리 약 1.8km~2km와 유사합니다. 둘레는 18丁, 약1.962km(실제 죽도의 둘레4k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죽도잡지의 죽도지도(竹島之圖) 관음도; 파란사각 안의 섬이 관음도로써 瀨戶三十間周十五丁(섬과 육지사이 여울의 길이는 30間이며, 섬의 둘레는 15丁)으로 표기했습니다. 위 죽도도설의 죽도지도의 표기와 유사합니다. 죽도; 붉은 사각 안의 섬이 죽도로써, 本島ヨリ凡十五丁周十八丁(본도로부터 약 15丁거리에 있으며, 섬의 둘레는 18丁)이라 적혀 있습니다. 위 죽도도설의 죽도지도와 동일한 표기입니다. 지도상 관음도와 죽도로 추정되는 두 섬에 대한 표기만을 살펴보았습니다. 비교적 고지도 치고는 굉장히 정밀한 울릉도 지도입니다. 일본에서의 이러한 울릉도 지도는 모두 죽도도해면허를 얻어 오오야·무라까와 두 가문이 울릉도에 도해할 때 작성된 지도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울릉도와 독도의 지도를 근거로 당시 일본이 두 섬을 실효지배했다고 주장을 하죠. 그러나 이 당시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던 두 가문이 속한 돗토리번에서는 죽도와 송도를 자신의 영지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696년, 안용복의 일본행으로 문제가 생기자 이에 에도막부가 2섬에 대해 돗토리번에 질문했고, 이에 대한 돗토리번의 회답서 2통에는 이 당시 돗토리번의 두 섬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돗토리번의 답변서 A 답변서 B 또, 에도막부는 죽도1건으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지도로써 에도시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지배했다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실효지배란, “현실적인 계속적이고도 평온한 국가 기능의 현시”(the actual continuous and peaceful display of State functions)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 두 가문에서 울릉도 도해를 할 때, 돗토리번뿐 아니라 에도막부는 두 섬이 조선령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명확한 증거가 일본의 관찬기록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1667)로써, 두 가문이 울릉도 도해 어업을 할 당시에 에도막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지도는 당연히 남의 영토에 침략해 어업을 했던 침략의 산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죽도1건'에서 일본정부가 이 사실을 시인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떤 영토를 실효지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의사가 필수적입니다. 아무나 어떤 땅을 이용했다고 해서 실효지배의 요건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죠. 아래 산인츄오신보에 실린 송도회도(松島會圖, 요나고 시립 산인역사관 소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하시면 될 듯 하네요. 에도시기 일본인이 울릉도와 독도를 분명하게 인식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 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울릉도 어업을 직접 경영했던 두 가문과 관계된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그나마 죽도도해 금지령 이후, 약 150여 년을 울릉도와 독도에 가지 못했기에 19세기 중엽에 들어서는 그 지리적 인식이 매우 희미해 집니다. 그로 인해 한때 두 섬에 대한 명확한 지리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잘못된 지리적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와중에 울릉도와 독도의 본래 명칭이 뒤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죠. 따라서,
이런 일본의 독도지도는 죽도1건에 松島(독도)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지도가 됩니다.
※ B씨께서 일본의 죽도지도에 대해서 문의를 해와 그동안 묵혀 놓았던 자료를 올렸습니다. B씨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죽도고도설(竹島考圖說, 1724)의 죽도·송도지도(竹島·松島之圖)는 이곳을 참조1724년 돗토리번에서 에도 막부에 제출한 울릉도와 독도의 지도는 이곳을 클릭 (oppekepe7의 홈페이지인데, 아직도 1里를 4km로 잘못 계산한 사진을 싣고 있네요. 여기서의 1里는 1海里로 약 1.852km입니다. 그의 무지가 또다른 역사왜곡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결어 Gerry-Bevers는 이미 객관적인 관점으로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을 잃은 소설가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1905년 이전, 분명하게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했다는 증거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죠. 1905년 시마네현고시로 독도를 불법 편입한 이후에도 그 전통을 계승하여 일본에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기술한 기록까지 존재합니다.(1907년 朝鮮水路誌, 1933년 朝鮮沿岸水路誌, 朝鮮産業誌 그 외 일제강점기 일본육지측량부가 편찬한 지역구역일람도, 교과서 등 등.....) 이러한 기록들은 본래 일본에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며,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의 石島가 독도임을 한국의 많은 학자가 증명했습니다. 이전 글 참조. 위의 Gerry-Bevers의 글은 한국에서의 독도에 관한 거짓말을 파헤친다고 그가 올린 글입니다. 그러나 실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신입니다. 그는 너무도 뚜렷한 기록까지도 말도 안되는 억지로써 의도적으로 자료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이미 그가 독도연구에 임해서 그 순수성을 잃었음을 극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Gerry-Bevers는 조선후기 조선의 지도에서의 우산도가 죽도였으면 하는 그의 희망으로 무리하게 분명한 자료들을 왜곡하고 있네요. 소설을 쓰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파렴치한 몇몇 일본인에게서 받은 자료를 다시 소설화해서 일본인에게 넘겨주는 행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Gerry-Bevers는 일본 극우의 역사왜곡에 이용되는 노리개에 불과한 것이죠. 이러한 무리한 자료해석은 사실 일본인이 보아도 납득할 수 없는 성질의 주장입니다. Gerry-Bevers 저작 독도 소설의 혼란 거짓을 말한다면 언제나 자신의 주장에 구멍이 생기기에 계속해 다른 거짓말을 덧붙이게 되죠. 이전 글에서 이미 살펴보았듯, 그는 황성신문·이규원의 검찰일기 등에서 우산도와 죽도가 다른 섬으로 묘사된 자료를 접하고 우산도가 관음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주장이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이전처럼 죽도라고 의견을 수정합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의견의 수정은 저와 토론을 하는 짧은 시간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토론 중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이유가 됐습니다. 사실 우산도가 죽도라는 주장도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규원의 검찰일기에서의 송죽우산등도(松竹于山等島)를 송죽도와 우산도, 즉 죽도와 우산도로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산도와 죽도가 같은 섬이 된다는 것인지 아마 자신이 생각해도 헛갈릴 것으로 판단이 되네요. 그래서 은근 슬쩍 그는 이 문구에서의 죽도와 우산도를 같은 섬으로써 재해석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설을 쓰는 것이죠. "내 책상위에는 휴지·화장지 등이 있다" 논리적 모순을 메우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완전 의도적으로 자료를 필요에 따라 편집하는 소설가로서, 그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그에게서 객관성과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심흥택의 보고서에서의 獨島라는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태도 역시 그가 극우 일본인들의 하수인임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고, 역사왜곡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인들의 하수인 역할을 하루빨리 그만두기를 희망합니다. ※ Gerry-Bevers에게
이 글을 보였더니, 엄청 흥분해서 계속 독도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군요.
쓸 만한 글이 보이지 않아 당분간 독도소설가인 그의 글에 대한 논평은
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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