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가기
매일신보(每日申報) 1913년 6월 22일 자 기사 대한신지지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의
경상북도 지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石島(東域圖
평안도 지도) 고종과
이규원의 대화(고종실록), 고종의 울릉도 주위 섬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새로
추가)
Gerry-Bevers가 최근 올린 몇
가지 쓸 만한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신문자료인 매일신보(每日申報) 1913년 6월 22일 자 기사입니다.
|

|
無人島探險中止
鬱島郡 西面居 金元俊은 鬱島 東北方 4, 50里에 位置하는
于山嶋(無人島)에 移住코자 移住民을 募集하고 探索키로
決定하였으나 10數年前 同地 韓國人이 聯合 探索하였어도
發見치 못하고 海圖에도 없으며 現時 航海路가 頻繁한데도
이를 現認하였다는 일이 없다하여 中止하다.
※ 좌측의 사진은 기사
내용 앞부분과 뒷부분의 간격이 커, 두 부분을 인위적으로 합친
것입니다.
|
먼저 이 기사에 대한 Gerry-Bever의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죠.
|
Location of Usando Unknown in 1903 and 1913 1903년과
1913년에도 알려지지 않은 우산도의 위치 (중략)
Notice that the article said that an Uldo (Ulleungdo) resident named Kim
Won-jun tried to find Usando in 1913, but was unable to do so. Notice also that
the article said a group of Uldo residents had tried to find Usando ten or more
years earlier (1903), but also failed. Kim claimed that Usando was supposedly
forty to fifty ri northeast of Ulleungdo, but there are no islands in
that area, which would explain why he and the other Koreans had failed to find
it.
기사에서 울도(울릉도) 거주자 김원준이라는 사람이
1913년 우산도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 것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십수년 전(1903년) 일단의 울도 거주자가 우산도를
찾으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고 한 것에 유념하십시오.
김원준은 추측건대 우산도가
울릉도의 북동쪽 4,50리에 있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
지역에는 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와
나머지 다른 한국인들이 왜 우산도를 발견하지 못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Korean maps tell us that Usando was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which is located about 2.2 kilometers off Ulleungdo’s northeast shore. (See maps
here, here, here, and here.) In 1903, two kilometers
was equal to five Korean ri, so it seems very likely that the island
that was supposedly 40 to 50 ri northeast of Ulleungdo was actually 4
to 5 ri northeast of Ulleungdo. Usando was simply an old name for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but was apparently no longer being used
by Ulleungdo residents in 1903 and 1913.
한국의 지도를 보면 우산도는 울릉도에 인접한 섬인
'죽도'로서, 죽도는 울릉도 북동쪽 해안에서 약 2.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here, here, here, and here
지도를 보십시오) 1903년 2킬로미터는
한국의 5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추측하건대 울릉도 북동쪽에서 4,50리
떨어져 있는 섬은 실제로는 울릉도 북동쪽 4,5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산도는 단순히 울릉도 주위 섬인 죽도의
옛 명칭이었지만 1903년과 1913년 울릉도 주민에 의해 분명하게
(우산도라는 명칭은) 더 이상 은 사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In 1899, the Korean newspaper, Hwangseong Shinmun, said that
“Usando/Jukdo” was Ulleungdo’s most prominent neighboring island. Here is the
relevant section of the 1899
article:
1899년 한국의 신문 황성신문에는 우산도/죽도가 울릉도의
가장 두드러진 인접 섬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의
관련부분은 1899
article: 이곳에 있습니다.
In the sea east of Uljin is an island named Ulleung. Of its six, small
neighboring islands, Usando/Jukdo (于山島竹圖) are/is the most prominent (崔著者). The
Daehanjiji says that Ulleungdo is the old Country of Usan. It has an
area of 100 ri. Three peaks stand out (律兀).
By 1903, just four years after the above article, had Ulleungdo’s most
prominent neighboring island disappeared or had the name “Usando” simply been
replaced by the name ”Jukdo”? 위 기사가 쓰인 4년 후인 1903년 무렵,
울릉도의 가장 두드러진 인접한 섬이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우산도라는 명칭이 간단하게 죽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요?
The 1913 article shows us that Koreans living on Ulleungdo at the time did
not consider ”Usando” to be Liancourt Rocks (Dokdo) since they most certainly
would have known of the rocks by then and since they believed Usando to be forty
to fifty ri northeast of Ulleungdo, not ninty-two kilometers to the
southeast, which is where Liancourt Rocks are. The above 1913 article also tells
us that Koreans living on Ulleungdo in 1903 did not know where Usando was, so
that means that even if they did know of Liancourt Rocks at the time, they did
not consider them to be Usando.
울릉도의 한국인은 그 바위섬을
그때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우산도가 울릉도
북동쪽 4,50리 거리에 있다고 믿었지 남동쪽으로 9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믿지 않았기에, 1913년 기사는 그 당시
울릉도에 사는 한국인들이 우산도를 Liancourt Rocks (Dokdo)라고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위의 1913년
기사는 1903년 울릉도 주민이 우산도의 위치를 알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어서, 이것은 당시 그들이 Liancourt
Rocks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섬이 우산도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관련 Gerry-Bevers의
글
|
1. 수년(數年)이라는 단어는 "두서너 해. 또는 대여섯 해"를 뜻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의 설명 따라서 십수년 전이라는 단어는 12,3년
전, 혹은 15,6년 전
이라는 뜻이 됩니다. 1913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1900년경이 됩니다. 십
년에 이어 數자가 붙었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기간을 표현하는 것으로, 1913년으로부터의 십수년 전을 1903년으로
확정한 그의 견해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정확히 10년 전이라면 굳이 數자를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죠.
Gerry-Bevers는1899년 9월
23자 황성신문 기사에서의 우산도와 죽도는 동일한 섬의 다른 명칭이라고
주장합니다. 매일신보의 기사를 통해 우산도는 죽도의 또 다른 명칭이므로 우산도를
따로 찾아봤자 발견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
울진지동해(鬱珍之東海)에
일도(一島)가 유(有)하니 왈(曰)
울릉(鬱陵)이라 기(其) 부속(附屬)한
소육도중(小六島中)에 최저자(崔著者)난
우산도(于山島) 죽도(竹島)이니 |
崔에는 "높다",
"높고 크다"라는 뜻이 있으며, 著에는 "드러나다",
"두드러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崔著者'는 (섬의
크기가) 크며 (높이가) 높고, 두드러진 것(섬)을 뜻합니다. 따라서 위 기사는 "울릉도에
부속한 소육도 중에 섬의 크기가 크고, 두드러진 섬이 '우산도'와 죽도'라는
설명입니다. 우산도와 죽도는 명확하게 다른 두 섬으로 기술된 것입니다.
Gerry-Bevers는 '崔著者'를 'the most prominent(가장
두드러진)'으로 해석했는데, 꼭 잘못된 해석이라 할 수는 없으나 정확한
해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崔著者를 "가장
두드러진"이라고 해석한다면, 그 뒤에는 하나의 섬이 나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Gerry-Bevers의 입맛에는 꼭 맞는 해석인 셈이죠.
저도
이전에 단국대 송병기 교수의 논문의 이와 같은 해석을 본 후, '가장
큰' 혹은 '가장 두드러진'이라고
해석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崔著者'는 "크고(높고) 두드러진
섬"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한국의 어느 기록에도 아무런 설명
없이 한 지역의 다른
두 개의 명칭을 연이어 나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보통 A와 B가 동일
지역의 다른 이름이라면, "一作 A一作 B"라고 열거하거나
"一云 A一云 B" 또는 "或 A, 或 B" 라고
열거를 하죠. A, B를 그대로 열거하는 경우도 전체 문장을 살펴보면
A와 B가 동일 지역의 다른 2개의 명칭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Gerry-Bevers는 사용례가 전혀 없는 해석을 채택해
우산도와 죽도를 같은 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채택한 해석의 근거를 보이기 위해 같은 사용례를 단 한 개라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1913년 매일신보 6월 22일
자 기사로도 1899년 황성신문 기사의 우산도가 죽도라는 그의 견해는
단번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Gerry-Bevers의 견해처럼 당시 우산도와
죽도가 같은 섬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었다면, 굳이 울릉도에서 한눈에
보이는 우산도를 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산도와 죽도는 분명히 다른
섬이었던 것이죠. 죽도는1882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부터 댓섬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기록되었고,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도 등장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죽도(Jukdo, 댓섬)을 '우산도(于山島)'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수백 년간
'우산도'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부속 섬으로 표기되었습니다. 우산도가
죽도의 별칭이라면, 우산도와 죽도가 같은 섬이라는 기록이 없을 수
없는 것이죠.
2. 이글 중 Gerry-Bevers의 소설가적
기질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1913년 매일신보 기사에서의 울릉도
북동쪽 4,50리를 4,5리로 추정한 부분입니다. 죽도가 울릉도에서 약
2킬로미터 거리에 존재하니 매일신보 기사에서의 4,50리를 2킬로미터
정도로 편집하여 매일신보 기사상 우산도를 죽도의 다른 이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죠.
기사상 4,50리라는 분명한 구절이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상상으로 마음껏 창작의 나래를 펴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는 소설가입니다.
3. 그럼, 1913년 매일신보의 '무인도
탐사 중지'기사가 나온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죠.
독도에 대한 조선~대한제국 시기의 명칭사용은 그
시기에 따라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울릉도 개척 이전
|
조선후기 울릉도 개척 이후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이후
|
|
우산도
|
독섬(돌섬, 石島; 울릉도 현지민)과 우산도(중앙 관리와
학자)를 혼용
|
독섬(石島),우산도에서 獨島로
정착되는 시기
|
독도의 본래 명칭은 우산도이며, 조선후기 울릉도 개척이 시작된
이래, 울릉도에 내륙의 타지인이 유입되면서, 울릉도 현지민은 독도를
돌섬(독섬)으로 호칭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 현지의 지리적 정보에
무지하지만 각종 서적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중앙의 관료들은 독도를
여전히 우산도로 호칭했죠.
우산도가 독도임은 조선후기 울릉도 동남쪽에 우산도가 표기된 지도나
각종 서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매일신보의 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독도(독섬) 이외에 따로
'우산도'라는 섬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울릉도
현지민이 우산도를 찾기로 했다가 탐사계획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십수년 전에도 우산도 탐색이 실행된 적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대략
1900년경에 울릉도 수색이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1882년
이규원이 울릉도를 실사할
당시 울릉도에는 약 180~190명의 조선인이 울릉도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이들 역시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독도를 호칭하고 있었습니다.
우용정(禹用鼎)일행이 1900년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해 6월 5일까지 조사활동을 한 바에 따르면 당시 울릉도의 주민은
약 400가구에 1,700명이었습니다.(禹用鼎의 '鬱島記' ; 而自壬癸開拓以後
至今居民爲四百餘家 男女共爲一千七百口 壬午․癸未년 개척이후 오늘날까지
주민은 400여 가구가 되는데 인구는 남녀 모두 1천7백여 명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 내에 무인도였던 울릉도는 조선정부의 적극적인
울릉도 개척을 계기로 타지인들이 섬의 주민으로 정착한
것이며, 이들은 내륙에서의 명명(命名) 방식으로 돌이 많은 섬 독도를 '돌섬(독섬)'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우산도'라는 명칭은 중앙의 관료와 학자들만이
알고 있던 독도의 이름이 된 것이죠. Gerry-Bevers의
말처럼 1900년 전후, 울릉도 현지민은 '우산도'라는 도명을 사용하지
않고 '독섬'이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1913년 위 매일신보의 기사는 이와
같은 사정에 의해 우산도가 독도임을 인지하지 못한 울릉도 주민이
이전에 어렴풋이 접했던 우산도라는 무인도를 탐사하여 이주하고자
했다가 중지된 일을 기사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해 Gerry-Bevers가
주장하듯 한국 역사 속 '우산도'가 '죽도(Jukdo)'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도는 울릉도에서 한 눈에 목격이 됩니다. 그럼,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한국고지도 및 문헌상의 '우산도'는
어느 섬이었을까요? 한국의 고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한 쌍으로써
수백 년 간 표기되어 왔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섬을 이처럼 오랫동안
표기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바로 독도인 것입니다. 죽도는
'댓섬'이라는 순 한글식 명칭과 더불어 울릉도 북동쪽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대나무가 많이 나는 섬을 지칭해 왔습니다. 어느 기록에도 죽도(竹島)가
곧 '우산도'를 호칭한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간혹 독도인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런 경우에 역시 우산도라는 이름과 죽도라는
이름이 동일한 섬을 호칭한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산도'라는 명칭은 '독섬', '독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공표된 이후인 1907년 대한신지지에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남쪽에 존재한다'는 기술내용에까지도 등장하며, 1908년
동국문헌비고를 보수한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울릉도조'에서도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이 울도군(鬱島郡)의 소속이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우산도는 울릉도 동남쪽에
있는 독도인 것으로 우산도가 죽도가 아니라면, 독도임은 너무도
명확합니다.
4. '매일신보'에서는 울릉도 북동쪽에
우산도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안용복 역시 일본에 붙잡혀 갔을 때,
울릉도 북동쪽에서 우산도를 보았다고 증언했는데, 얼마 전 발견된 문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를
통해 북동쪽에 있다는 우산도가 일본인이 송도를 부르던 독도임이
판명됐습니다. 왜 이들이 독도가 울릉도 북동쪽에 위치한다고 착각을
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제 능력으로 알 수 없으나, 조선에서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섬이 우산도 라는 명칭으로 불리었음은 분명합니다.
우산도가 일본인이 송도라고 부르는 섬임을 기록한 조선의 관찬기록을
통해서도 이 점은 확실해 집니다.
Gerry-Bevers가 이 신문기사를 제시한
것은 우산도가 독도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 살펴본 것과 같이 '죽도가 곧 우산도'라는 그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증거자료인 셈이죠. 그는 매일신보 기사의 핵심은 피한 채 자신의
소설을 좀 더 그럴 듯하게 편집하기 위한 열망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를 한국 역사 속 우산도는 죽도인데, 매일신보
기사에서는 울릉도에서 4,50리(16~20km) 떨어진 섬으로 나와 있죠. 여하튼
우산도는 죽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소설가적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기사상 4,50리를 재빨리 4,5리로 편집하여 우산도를 현재의
죽도(Jukdo)로 수정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기에(supposedly) 4,5리가
아닌가 보인다 했지만, '우산도'를 탐색(探索)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내용만으로도
기사상 우산도가 죽도가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는 언제나 이런 상식적인 선의
사고조차도 배제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어서 위에서
언급한 1907년 대한신지지와 그 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의
경상북도 지도를 살펴보죠.
|

|

|

|
|
1907년
대한신지지와 대한신지지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 경상북도
지도, 鬱島 부분 확대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 지도에는 죽도(지도에서는
'竹')가 울릉도
동북쪽의 정확한 위치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럼, 대한신지지 분문의 울릉도(鬱島)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우산도는 죽도가 아닙니다. 울릉도 동남쪽에는 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한신지지 본문에서는 울릉도의 가장 큰 부속 섬인 죽도에 대한 언급 없이
우산도가 동남쪽에 위치한다고 했죠. 바로 수백 년 간 울릉도의 대표적인
부속
섬으로
여겨왔던 독도인 것입니다.
이 또한 한국역사 속 우산도를 죽도라고
주장하는 Gerry-Bevers의 견해와는 상반된 기술내용입니다.
대한신지지에 대해서 그가 또 어떤 소설을 썼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죠. Gerry-Bevers의
대한신지지 관련 글
|
The following is a map of North Gyeongsang Province
(慶尙北道), which was included in the 1907 Korean geography
text, Daehan Sinjiji (大韓新地志). The map also includes
a cutout of Ulleungdo (鬱陵島), which was a county of
North Gyeongsang Province and was called "Uldo"
(鬱島) at the time. The map of Uldo (鬱島) is in the
lower left-hand corner of the map.
다음은 1907년 한국의 지리교과서인 대한신지지에 수록된
경상북도 지도입니다. 그 지도 역시 경상북도 울릉도의
세부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당시는 울도라고 불리었습니다.
울도지도는 이 지도 아래 왼쪽에 있습니다.
If you look closely at the map of Uldo (鬱島), you
should see a small island off its northeast shore labeled
as "竹" (Juk), which was an abbreviation for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竹島). The
map does not show Ulleungdo with any other neighboring
islands. Not even Gwaneumdo (觀音島), which is a fairly
large neighboring island of Ulleungdo is shown. However,
Gwaneumdo is only about 100 meters off the east shore
of Ulleungdo, and maps at the time suggest that Gwaneumdo
was considered more of a cape than an island, which
was most likely why it was not shown as an island on
this map.
울도지도를 확대해 보면 울릉도의 주위
섬인 죽도의 약자인
죽(竹)이라고 표시된 울릉도 북동 해안에 떨어져 있는 작은 섬
하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도에는 울릉도와 그
이외 다른 인접 섬은 나오지 않습니다. 울릉도의 꽤 커다란
부속 섬인 관음도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음도는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약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 당시 지도에서는 관음도가 하나의 섬으로서 보다는 하나의
갑(岬)으로서 간주하였음을 시사합니다. 그것이 이 지도 위의
하나의 섬으로서 나타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Inside the box encircling Ulleungdo are Chinese characters
that give the latitude and longitude for the island.
The characters and their translation are as follows:
울릉도를 에워싼 박스 안에는 그 섬의 경위도를 수록한
한자가 있습니다. 그 문자와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南北緯 百三十度 四十五分至三十五分 North-South
Latitude: 130 degrees 45 minutes ~ 35 minutes
東西經 三十七度 三十四分至五十一分 East-West Longitude:
37 degrees 34 minutes ~ 51 minutes
Unless I am misunderstanding something, the geography
text seems to have gotten the longitude and latitude
mixed up. That would mean that the latitude should be
37 degrees 34 minutes ~ 51 minutes, and the longitude
should be 130 degrees 45 minutes ~ 35 minutes. Excusing
that mistake, the map gives the eastern-most boundary
of Ulleungdo at an east longitude of 130 degrees 45
minutes. That measurement is off the actual location
by about 11 minutes since Ulleungdo's Jukdo (竹島) is
actually at an east longitude of approximately 130 degrees
56 minutes.
만일 내가 무언가 오해하지 않았다면, 그 지리교과서는
경도와 위도를 혼동한 것 같습니다. 위도가 37도 34분~51분이
되어야 하며 경도가 130도 45분~35분이어야 합니다.
이런 실수를 봐준다면 그 지도는 울릉도의 최동단 경계를
동경 130도 45분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측정은 울릉도
죽도의 실제 동경이 대략 130도 56분이기에 실제 위치와
약 11분 정도 오차가 있습니다.
Korea claims that Liancourt Rocks (Dokdo) was also
a part of Uldo County (鬱島郡) in 1907 and was called
"Seokdo" (石島), but not only does this map
of Ulleungdo not show Liancourt Rocks or any island
named "Seokdo," it also tells us that Liancourt
Rocks could not have been a part of Uldo county since
Liancourt Rocks are located at a longitude of 131 degrees
52 minutes, which is much farther east of the eastern-most
boundary of Ulleungdo given above. The name "Seokdo"
(石島) was not a reference to Liancourt Rocks, but was
simply a reference to the small, rock islets around
Ulleungdo. The name "Seokdo" (石島) means
"rock island" or "rock Islets".
(See HERE.)
한국은 Dokdo(Liancourt Rocks)가 1907년 울도군의
소속이었으며 석도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울릉도의
이 지도에는 Liancourt Rocks 혹은 석도라는 이름의 어떤
섬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Liancourt
Rocks는 경도 131도 52분에 위치해 있는데, 그 위치는 위
문장에 부여된 울릉도 최동단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울도군의
일부분이 아님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석도라는 명칭은 Liancourt Rocks를 언급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울릉도 주위의 작은 바위 섬을 언급한 것입니다.
석도라는 이름은
"rock island" 혹은 "rock islets※"을
의미합니다. (이곳을
보세요)
※islet은 island라고 부르기에는 크기가 작은 섬을
뜻한다. rock islets은 그러한 작은 바위 섬이 여럿 모여
있음을 뜻한다.
|
지도상 경상북도 울릉도에
표기된 경위도를 문제 삼아 대한신지지에서는 죽도까지만을
울릉도에 포함된 부속 섬으로 기재했다는 군요. 하지만, 당시의 경위도
표기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미 대한전도의 경위도 표식은
형식적인 표기임을 밝힌 글을 올렸습니다. 즉, 경위도에 관한 지리적
인식이 없었던 대한제국에서는 일본의 지리서를 그대로 인용했고, 당시의
일본의 지리서 역시 서양의 경위도 표식을 그대로 인용해 쓰고 있었죠.
하지만, 대한신지지에서는 교과서 본문내용에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한 우산도(독도)가 울도(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서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기술했습니다. 이처럼
경위도 표식에는 독도를 그 범위밖인것처럼 표시하면서도 본문내용에는 독도를 포함시킨
것은 동시기의 일본기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측 기록 역시 한반도 경위도 표식에 독도를 배제하는 표기를 했으면서도
독도를 한국의 강원도에 소속된 섬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지지(大韓地誌)의 영토범위"를 참조(아이콘을
클릭) |
|
이런 형식적인
경위도 표기상의 문제만을 부각시키고 Gerry-Bevers는
대한신지지 본문내용에 언급된 우산도라는 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Gerry-Bevers는 우산도가 죽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대한신지지 부도상 죽도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존재하고 있으며,
교과서 본문에서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대한신지지 본문의 우산도와 대한신지지부지도의 죽도는 다른 섬입니다. 그의
"우산도=죽도"라는 견해는 이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붕괴됩니다.
뭘,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이 대한신지지 본문에서 울릉도의 가장 대표적인 부속 섬으로 죽도가
아닌 우산도를 꼽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 울릉도와 함게
동해바다의 대표적인 섬으로 거론된 우산도가 독도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대한신지지부지도에서는 Gerry-Bevers의
지적처럼 경도와 위도를 바꾸어 기재했습니다. 그만큼 대한제국이 경위도
정보에 무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대한신지지 본문내용에서 우산도(독도)가 경상북도
울도에 소속된 섬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도를 근거해
대한제국에서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망발을 할 수는 없습니다. Gerry-Bevers는
대한신지지의 기록 중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우산도'가 어느 섬인지
정확히 규명한 후에 자신의 소설을 계속 쓰시기를 권합니다.
Gerry-Bevers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石島'를 '울릉도 주위의 모든 바위를 일컫는
용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전 석도를 현재의 관음도라고 했던 자신의
견해에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존재했다고 생각해, 석도(石島)를 울릉도 주위
바위를 통칭한 명칭이라는 일본학자의 글을 보았는지,
이처럼 자신의 소설을 수정했습니다.
石島란 명칭이 과연 그의 말처럼
한국역사 속에서 많은 바위를 통틀어 일컬었던 사레를 찾아오라는 제
요구에 이번에 그가 찾아낸 자료가 바로 동역도의 '평안도 지도'입니다.
|

|

|

|
|
동역도(東域圖)
평안도 지도(1776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
관련 Gerry-Bevers의
글
위 지도의 石島는 6개의 바위
섬을 통틀어
명명(命名)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石島라고 명명된
섬은
6개의 바위가 군집을 이루는 형태의 섬이라는 사실입니다. 울릉도 주위에
산재한
바위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죠. 보통 몇 개의 바위섬이 모여 있다면, 그 바위섬을
하나로 묶어 石島라는 명칭을 부여해 하나의 개체로 다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 주위에는 수많은 바위섬이 동서남북 4방에 산재해 있죠. 울릉도 주위에
산재한 바위를 하나로 묶어 石島라는 명칭을 부여했을 가능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개 독도와 같이 주요한 바위섬 하나나 몇개를 중심으로
그 주위의 암초를 하나로 묶어 돌섬(石島)이라고 지칭합니다. 본섬인
울릉도를 빼고 그 주위의 바위 섬만을 통틀어 석도라는 이름을 부여한
사례는 없습니다. 한국 역사 속 石島는 하나의 섬(바위가 군집을 이루는
경우나 그 바위 주위의 부속한 암초를 포함해)에 부여된 명칭으로 쓰였습니다.
그는 단 한 차례의 사용례도 없는 경우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만
적용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한 소망으로 말미암아 그는
터무니없이 189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제작자도 알 수 없는 조선지도 강원도도(江原道圖)의 사례를 동역도의 石島와 관련을 시킵니다.
|

|
|
조선지도(朝鮮地圖,
1898,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조선지도 강원도도에는 울릉도 밑의 5개의 섬이
기재되어 있는바, 동역도 평안도 지도에서처럼 이 5개의 섬을 통틀어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의 石島라 이름했다는 것이죠.
물론 조선지도상 이 5개의 섬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이전 울릉도도형, 광여도, 해동지도와 같이 잘못 그려진 지도를 바탕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5개의 섬을 그대로 그려넣은 것이죠.
그러나 대한제국 정부는 이처럼 울릉도 밑에
5개의 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규원
일행이 고종황제에게 바친 울릉도 외도에 역시 5개의 섬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산도가 아닌 죽도(竹島)라는 정확한
명칭표기와 함께 제 위치에 죽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우용정과
라포르테를 파견해 다시 한번 울릉도를 실사합니다. 이렇게 울릉도를
직접 실사한 대한제국 정부가 1898년 조선지도에서처럼 울릉도 밑에 존재하지도
않는 5개의 섬을 합쳐서 石島라는 명칭을 부여했을 리는 없죠.
Gerry-Bevers는 조선지도를
그린 작자가 마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발표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조선지도나 대한전도를 그린 작자는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없어, 이전 오류가 존재하는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石島와 '조선지도'의
울릉도 밑의 5개의 섬을 연관시키는 모습은 무리하게 자신의 견해를
짜맞추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Gerry-Bevers의
최근 글 몇 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제가 자신의 글을 보아 주기를
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글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의 독도 인식은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고정된 시각으로 몇몇
자료를 무리하게 꿰맞추고 있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연구가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양심과
통찰력조차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누군가는 그 소설을
바로 지적해 주어야 왜곡된 정보가 널리 유포되는 일이 없을 듯하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글은 사실 논평할 가치가 있는 글은 아닙니다.
이 점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의 이런
왜곡행위를 접하면서, 그가 한국을 사랑한다는 그의 입에 발린 발언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독도에 관련된 역사를 단순한 학술적인
관심에서 연구하는 일은 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의 진실 왜곡행위는
이미 그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독도의 역사를
다룬다면, 그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볼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Gerry-Bevers는 마치 자신이 일본 극우의 일원이라도 된
양
너무도 분명한 자료까지 턱없는 논리로써 부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독도 한일 영유권 분쟁에서 제3자로서의 시각으로 독도를 바라보는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를 일본 극우 혐한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본의 극우 혐한과 오랜 기간 친분을
나누어서 일까요? 그의 토론방식은 극우 혐한들의 그것과 비슷해져 있습니다.
사소한 말실수를 물고 늘어져 상대 주장의 신뢰성을 손상하려는 수법은
제가 한일 번역게시판의 일본 극우 혐한들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합니다.
관련
토론
(글 작성일자 ; 2007.
11.14)
|

|

|

|
|
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1711, 박석창 ) |
광여도(廣輿圖,
19세기 전반)의
울릉도 |
대한전도(1899)의
울릉도 부분 |
조선
조정은 3년마다 한 번씩 울릉도 수토관을 보내 울릉도를 조선의 변방영토로
관리했습니다. 이 울릉도 수토관들이 그린 울릉도 지도를 보면, 죽도에
위치한 섬에 우산도라고 잘못 기재한 지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가 분명하게 보이는 지도의 특징은 울릉도 밑에 존재하지도
않는 4~5개의 섬이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울릉도 밑에 4~5개의 섬이 등장하는
대한전도, 대한여지도 역시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해 그린 지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물론 우산도는 한국 역사상 독도를 의미했기에 대한전도나
대한여지도에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기재한 지도라 주장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다만, 이 지도들이 이전 '울릉도도형'과
같이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지도를 바탕으로 그려졌기에 대한전도나
대한여지도의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 위치에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 고지도속 우산도 위치의
혼동 |

|
울릉도 수토관들이 울릉도에
실제로 도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울릉도 곳곳을 둘러보지 않고, 지도를
작성해 조정에 바친 것입니다. 이들은 독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울릉도에서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죽도를 사전지식에 의해 인지했던 우산도로
착각을 했던 것이죠. 울릉도 공도정책으로 울릉도에 현지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런 착각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울릉도도형'과
같은 잘못된 지도를 바탕으로 광여도나 여지도, 대한전도 등에서 역시
우산도를
죽도의 위치에 표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울릉도 수토관들의 직무태만으로
말미암아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조선 일부에 퍼지게
된 것이었죠.
박석창의 울릉도도형이 나오기 불과 10여 년
전 안용복은 우산도가
왜인이 말하는 松島(독도)임을 조선조정에 고했습니다. 숙종실록의 기록
등을 단 한 번이라도 자세히 검토했다면 이처럼 우산도를 죽도의 위치에
그려넣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울릉도 수토관들이 울릉도를 직접 돌아다니며
지형지물을 확인해 보고, 울릉도에 드나드는 현지민들에게 주위 섬에
대한 호칭을 확인해 봤다면,
이런 오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류가 조선과 대한제국 전체, 특히, 중앙정부의 견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대한제국시기 울릉도도형을 비롯해 우산도를 죽도로 착각한
지도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몇몇 착각이 당시의 대표적인
지리적 인식으로 편집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울릉도도형 광여도 여지도 대한전도등 명백하게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지도를 살펴보면, 우산도는 울릉도에 매우 근접해 있으며, 그 위치와 크기가
현재의 죽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죠. 울릉도 바로 앞의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했다면 그 위치나
울릉도에서의 거리, 크기 등을 혼동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울릉도 아래 5개의 섬이 존재하지 않는 우산도가 기재된
조선의 지도를 살펴보죠. (이곳을 참조 한국의
고지도 속 우산도)
우산도의 크기가 위 울릉도도형 등의 지도와는 차이가 납니다. 그
위치 또한 울릉도 4방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울릉도도형 등의 지도는
확실히 울릉도 바로 앞의 죽도를 실견하고 그 섬이 한국의 옛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라고 착각을 하고 그린 지도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조선의
지도는 우산도의 위치를 정확히 확정하고 있지 못하며, 섬의 크기가
상당히 크게 그려져 있어, 우산도를 현재의 죽도로 착각한 위 지도와는
분명하게 구별이 됩니다. 조선의 지도 중 우산도를 울릉도 동쪽에
위치시킨 지도가 가장 많으며, 다음이 울릉도 남쪽, 동남쪽, 서쪽의
순입니다.
만일 우산도가 울릉도에서 한눈에 목격할 수 있는
죽도라면, 이렇게 그 위치를 혼동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산도가 울릉도에서 항상 목격할 수 없는 독도였기에 이러한
혼동이 생겼던 것입니다.
|

|

|

|
|
울릉도외도(1882년, 규장각 소장)의
죽도 |
朝鮮國蔚陵島出張檜垣內務少書記官復命ノ件
수록 울릉도지도(1883년)의 죽도
|
대한신지지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
1907년) 울도 지도의 죽도
|
죽도(Jukdo)가 표기된 위 3장의
지도를 보죠. 竹島(Jukdo)는 울릉도 동북쪽 정확한 위치에 울릉도에
상당히 근접하여 조그맣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전 한국의 고지도 속
우산도와는 그 크기나 울릉도에의 근접성에서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위치상 혼동도 전혀 보이지 않으며, 죽도는 울릉도에서 최단거리로 약
2km의 거리에 있으므로 사실상 울릉도 바로 옆에 붙여 그렸습니다. 이런
죽도가 한국전도에 울릉도와 함께 따로 표기될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울릉도만 표기된다면 죽도는 당연히 그에 딸린 부속 섬으로 간주됩니다.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약 87km 떨어진 독도이기에 우리 영토로 규정해
울릉도와 함께 한국전도에 표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또한, 조선의 지도는 후기로 갈수록 우산도의 위치가 울릉도 동남향에
바로 잡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

|

|

|
|
조선전도(朝鮮全道, 18세기 후반, 숭실대박물관 소장)의
우산도 |
해좌전도(海左全圖, 19세기 중엽,
독도박물관
소장)의 우산도 |
1890년 8월 National Geographic
제 2권 4호에 소개된 조선지도(Korea)의 우산도
|
특히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계본초나 황성신문
기사에서는 우산도와 죽도를 다른 섬으로써 묘사했으며, 1908년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우산도가 울도군에 소속되었음을 밝힘과 동시에 그 섬이 일본인이 독도를
부르던 松島임을 주기했습니다. 또한, 황현의 저서에서는 獨島가 예로부터
울릉도에 부속된 섬임을 기술하여 조선의 고문헌과 지도에 기재된 우산도가
독도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한가지 더하면, 1907,8년 대한신지지,
초등 대한지지에서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후기 이후 우산도의 위치가 바로 잡히는
현상은 우산도가 죽도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우산도가 죽도라면,
그 위치를 동남쪽에 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에서 죽도를 우산도로
표기한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죽도가 우산도라면 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한편, 조선시대 우산도의 위치와 섬
정보에
대한 혼동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1882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규원 일행은 그들이 직접 울릉도 전도(全島)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울릉도의
지형을 확인했으며, 울릉도에 드나드는 현지인들의 견해를 접해 죽도가
우산도가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직전 고종황제와 나눈
대담을 통해서도 우산도와 죽도가 서로 다른 두 섬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고종황제는 울릉도 수토관의 보고를 받고 있었으므로 이 기록에서의
고종황제의 울릉도와 울릉도 주위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1882년 울릉도 검찰을 시작하기 전, 조선 조정의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인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Gerry-Bevers가 아직도 고종과 이규원의
대담이 기록된 고종실록,
승정원 일기 1882년 4월 7일조를 근거하여 우산도가 죽도 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에 이번에는 좀 더 상세하게 이 기록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고종황제는 울릉도 주위에 2개의 섬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송죽도(松竹島) 하나는 우산도(于山島). 여기에서 송죽도는 죽도(Jukdo)로 보아서 무리가
없으며, 나머지 하나인 우산도는 독도입니다.
이 기록에 대한
Gerry-Bevers의 소설을 소개하죠. 이전
그는 이 기록에서의 우산도가 현재의 관음도라고 했습니다. 이 글은
그의 그러한 주장을 수정한 이후에 나온 것으로 우산도는 죽도라 하고
있습니다.
|
Disagreement on the Number of Neighboring Islands 이웃한
섬의 개수에 대한 불일치
Notice that King Kojong and Lee Gyu-won disagreed
on the number of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s. King
Kojong said there were two, but Lee said there was only
one. (중략)
고종황제와 이규원이 울릉도에 인접한 섬의 갯수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에 유념해 주십시오. 고종황제는 2개의
섬이 있다고 했으나 이규원은 1개의 섬뿐이라고 발언합니다.
(중략)
Even though he seemed unsure of their names, King
Kojong seemed sure that three islands made up Ulleungdo.
When Lee Gyu-won said that Songjukdo was Ulleungdo's
only neighboring island and that Usando was just the
old name for Ulleungdo, the king seemed to suggest that
Songjukdo (松竹島) could be two separate islands, Songdo
(松島) and Jukdo (竹島), and that if Usando (芋山島)
were just another name for Ulleungdo, then that would
still mean that Ulleungdo was made up of three islands.
Lee Gyu-won, however, rejected that theory and said
that Ulleungdo had only one neighboring island, "Songjukdo."
고종황제는 (울릉도 주위 섬의)명칭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해도 3개의 섬이 울릉도를 구성한다는
것은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이규원이 송죽도가 울릉도의 유일한
인접 섬이며 우산도가 울릉도의 옛 명칭일 뿐이라고 발언했을
때 고종황제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또 다른 명칭일 뿐이라면,
송죽도는 2개로 분리된 섬인 송도와 죽도라고 하여 여전히
울릉도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넌지시 비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규원은 그 이론을 부정하고
울릉도에는 단 하나의 인접 섬인 "송죽도"만이
존재한다고 대답했습니다.
Distance to Songjukdo 송죽도까지의
거리
Lee Gyu-won said that Songjukdo was "twenty
to thirty ri" (三數十里) offshore of Ulleungdo.
That would be eight to twelve kilometers (1 Korean ri
= 0.4 km), which would be farther than any of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s. Some "Dokdo" advocates
have suggested that maybe Songjukdo was "Dokdo"
(Liancourt Rocks); however, besides the fact that Liancourt
Rocks is ninety-two kilometers away for Ulleungdo, not
eight to twelve, Lee said that the island had juniper
and pipestem bamboo on it, which would eliminate any
possibility that Songjukdo was Liancourt Rocks. Songjukdo
was almost certainly referring to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竹島), which just happens to be one
of the two alternate names given for Songjukdo by both
King Kojong and Lee Gyu-won. Jukdo is about 2.2 kilometers
off of Ulleungdo's east shore.
이규원은 송죽도가 울릉도
해안에서 삼수십리(三數十里)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8~12km(한국식 1리는 0.4km)로, (실제) 울릉도의
어떤 주위 섬보다 멀리에 있게 됩니다. 독도지지자들은
송죽도가 '독도'일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Liancourt
Rocks가 울릉도로부터 92km 떨어져 있지 8~12km 거리에
있지 않다는 점, 게다가 이규원이 그 섬에 단향과
간죽이 난다고 언급했다는 사실로부터 송죽도가 Liancourt Rocks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송죽도는 울릉도의 이웃한
섬인 죽도를 언급한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 죽도는 고종과
이규원 모두가 송죽도에 부여한 2개의 엇갈린 이름의
하나일 뿐입니다. 죽도는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약 2.2km
거리에 있습니다.
I have seen 三數十里 translated as "thirty ri"
(三十里); in fact, Korea's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國史編纂委員會) translates it as "thirty
ri" HERE, but such a translation ignores the character
數 in the phrase 三數十里, which was a range of numbers:
from "tens of" (數十) to "thirty"
(三十). When Koreans give a range of numbers, they normally
begin with the larger number, so that means that 三數十里
would literally translate as "from thirty (三十)
to tens (數十) of ri (里)." Therefore, if thirty
were the larger number, that means that 數十 could only
be translated as "twenty."
나는 三數十里를 '30리'로서 해석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국사편찬위원회는 30리로서
해석합니다. 여기,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三數十里라는 어구(語句)의 數라고
하는 한자를 무시한 것인데, 그것은 수십에서 30까지의
숫자의 범위입니다. 한국인은 어떤 숫자의 범위를 부여할
때 보통 더 큰 숫자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삼수십리(三數十里)는
글자 그대로 "30에서 수십 리이다." 라고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30이 더 큰 숫자라면 수십은 "20"으로서
해석될 수 있을 뿐입니다.
Name Confusion: Usando, Songjukdo, Songdo, &
Jukdo 명칭 혼동; 우산도, 송죽도, 송도와 죽도
The conversation between King Kojong and Inspector
Lee Gyu-won shows quite clearly that, in 1882, even
Korea's king and his advisors were unsure of the geography
of Ulleungdo. Korea's maps showed Usando to be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but Korean documents, including
the Yeojiseungram (輿地勝覽) mentioned above, apparently
also showed Songjukdo (松竹島) as a neighboring island.
Also, a secret Japanese mission to Korean in 1869 reported
in an 1870 document HERE that Ulleungdo had a neighboring
island called "Matsushima" (松島 = Songdo),
which the Japanese wrote they had no record of. Before
that, in 1794, Ulleungdo Inspector Sim Jin-hyeon (沈晉賢)
reported that Ulleungdo had a neighboring island called
Jukdo (竹島), but did not mention either Usando or Songdo
in his report.
고종황제와 검찰사 이규원
사이의 대화는 1882년 한국의 국왕과 그의 고문들이 울릉도의
지리에 대하여 확신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한국의 지도상 우산도는 울릉도의 이웃한 섬 죽도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여지승람을 포함한 한국의 문헌 역시
송죽도가 이웃한 섬으로써 명확하게 나타냈습니다. 또한,
1869년 한국에 파견된 일본의 비밀 사절단은 1870년 보고서에서
울릉도는 松島라고 하는 일본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인접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전인 1794년 울릉도 검찰사
심진현은 울릉도에는 죽도라 불리는 이웃한 섬이 존재한다고
보고했으나, 우산도나 송도에 대해서는 그의
보고서에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When Lee Gyu-won conducted his inspection of Ulleungdo
in 1882, he found two islands: Jukdo (竹島) and Dohang
(島項). His map of Ulleungdo showed that Jukdo was almost
certainly Ulleungdo's present-day neighboring island
of Jukdo (竹島), and Dohang was Ulleungdo's Gwaneumdo
(觀音島). He reported that he could find no islands
named "Songjukdo" or "Usando" and
concluded that Usando was just another name from Ulleungdo.
Neither King Kojong nor Lee Gyu-won showed any clue
that they knew Liancourt Rocks even existed.
1882년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수행할 때 그는 2개의 섬을 발견했습니다. 죽도와
도항입니다. 그의 울릉도지도에는 죽도가 현재 울릉도에
이웃한 섬인 죽도로, 도항은 울릉도의 관음도임이 거의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송죽도 혹은 우산도라고
명명된 섬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으며, 우산도는
울릉도에서이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고종황제도
이규원도 그들이 Liancourt Rocks의 존재만이라도 알고
있었다는 어떤 실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Why aren't there any Korean maps that show either
Usando, Songjukdo, Songdo, or Jukdo together? The most
logical explanation is that they were four different
names for the same island. "Songjukdo" (松竹島)
was obviously a combination of two names--"Songdo"
(松島) and "Jukdo" (竹島)--both of which were
names that were mentioned during the territorial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in the 1690s. Then, Korea claimed
that Jukdo (竹島) was an alternate name for Ulleungdo
that Korean fishermen used, and An Yong-bok had claimed
that the Japanese name for Usando was "Matsushima"
(松島 = Songdo). Since Korean maps showed Usando to
be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it was almost
inevitable that some would start using Songdo (松島)
to refer to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Even in 1899, the Korean newspaper Hwangseong Sinmun
(皇城新聞) reported that Ulleungdo's most prominent
neighboring island was "Usando/Jukdo" (于山島竹島),
which was most likely written to show that there were
two names for the same island. If the "Usando/Jukdo"
in the 1899 article meant two separate islands, as some
claim, then why was only Jukdo, not Usando, mentioned
one year later in Korea's Imperial Edict 41, which upgraded
Ulleungdo's status to a county?
왜 우산도, 송죽도,
송도 혹은 죽도가 함께 기재되어 있는 한국의 어떤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가장 논리적인 설명은 같은
섬에 대한 4개의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송죽도는
분명하게 두 개의 이름이 조합된 것입니다. --- 송도와
죽도 -- 이 두 가지 이름은 1690년대 한일간 영유권 분쟁이
있던 동안에 언급된 명칭입니다. 그때 한국은 죽도는 조선
어부가 사용한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안용복은 우산도가 송도라고 주장했었죠. 한국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이웃한 섬 죽도를 나타내고 있기에 누군가
송도를 울릉도의 인접한 섬 죽도를 언급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거의 당연한 것입니다. 1899년에조차도
한국신문 황성신문은 울릉도의 가장 두드러진 인접 섬은
우산도/죽도라고 했는데, 이것은 같은 섬에 2개의
이름이 있었던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쓰여진 것 같습니다.
만일 1899년 기사의
우산도/죽도가 누군가가 주장하듯, 2개의 분리된 섬을 의미한
것이라면, 그때 왜 대한제국 울릉도를 군에 승격시킨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1년 후 언급한 죽도만 등장하고 우산도는
없습니까?
관련 Gerry-Bevers의
글
|
Gerry-Bevers는
울릉도 검찰을 떠나기 전의 이규원의 발언에 집착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규원은 울릉도 주위 섬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Gerry-Bevers는 이규원이 직접 울릉도
실사를 시작 하면서의 기록이나 검찰을 끝마친 후의 기록보다 울릉도
검찰 전의 발언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규원의 발언은 그야말로
정확하지 않은 그 자신의 소견일 뿐입니다. 울릉도에 직접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동해 먼바다에 울릉도와 우산도라는 2섬이 존재한다는 정도의 짤막한
지식을 각종 자료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에서
우산도까지의 거리나 우산도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무지했죠. 현재에도
한국 남해안의 어떤 섬에 대해서 누군가 질문한다면, 직접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이규원은 책 몇 줄만을 보고 습득한
지식에서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해서 발언한 것이죠.
이규원의 발언에 비하여 고종황제의 지리적 인식은
그 중요도가 높습니다. 울릉도 개척을 시작하기 전, 조선 조정의 실질적이고 일반적인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 일기의 기록을 직접 보겠습니다.
|
初七日. 召見檢察使李奎遠 辭陛也. 敎曰 鬱陵島近有他國人物之無常往來 任自占便之弊云矣. 且松竹島芋山島 在於鬱陵島之傍 而其相距遠近何如
亦月何物與否未能詳知. 今番爾行 特爲擇差者 各別檢察. 且將設邑爲計 必以圖形與別單 詳細錄達也. 奎遠曰 芋山島卽鬱陵島 而芋山 古之國都名也.
松竹島卽一小島 而與鬱陵島 相距爲三數十里 其所産 卽檀香與簡竹云矣. 敎曰 或稱芋山島 或稱松竹島 皆輿地勝覽所載也.
而又稱松島竹島與芋山島爲三島統稱鬱陵島矣. 其形便一體檢察. 鬱陵島本以三陟營將越松萬戶 輪回搜檢者 而擧皆未免疎忽. 只以外面探來 故致有此弊
爾則必詳細察得也. 奎遠曰. 謹當深入檢察矣. 或稱松島竹島 在於鬱陵島之東 而此非松竹島以外 別有松島竹島也. 敎曰 或有所得聞於曾往搜檢人之說耶. 奎遠曰
曾往搜檢之人 未得逢著 而轉聞其梗죏矣.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을 소견하였다. 하직인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울릉도(鬱陵島)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상(無常)으로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네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골라서 임명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고을(邑)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지에다가 자세히 적어 보고할 것이다."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芋山島)는 바로 울릉도(鬱陵島)이며 우산(芋山)이란 바로 옛날의 나라 수도[國都]의 이름입니다.
송죽도(松竹島)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鬱陵島)와 떨어진 거리는 20~30리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檀香)과 담뱃설대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산도(芋山島)라고도 하고 송죽도(松竹島)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松島)·죽도(竹島)라고도 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鬱陵島)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볼
것이다. 울릉도(鬱陵島)는 본래 삼척 영장(三陟營將)과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면서 수색․검열하던 곳인데 거의다 소홀히 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을 가져왔다. 너는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松島)와 죽도(竹島)는 울릉도(鬱陵島)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松竹島)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하교하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라고 하니 규원(奎遠)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대체적인 내용을 얻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실록 高宗
19년(1882년) 4月 7日(壬戌)條)
|
|
上曰 或稱芋山島 或稱松竹島 皆輿地勝覽所製也. 而又稱松竹島 與芋山島爲三島 通稱鬱陵島矣. 其形便 一體檢察.
鬱陵島 本以三陟營將 越松萬戶 輪回搜討者 而擧皆未免疎忽 只以外面探來 故致有此弊. 爾則必詳細察得也.
왕께서 가로되, 혹은 칭하기를 우산도(芋山島)라하고 혹은 칭하기를 송죽도(松竹島)라 하는 것은 모두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송죽도(松竹島)라고 칭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더불어 3섬이 되고, 모두 '울릉도'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승정원일기 高宗
19년(1882년) 4月 7日(壬戌)條)
|
고종황제의 울릉도 주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자세히 살펴보죠. 고종황제는 울릉도 곁에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 라는 섬이 있다고 합니다. 이규원은 자신의 잘못된 지식에
의해 우산도는 바로 울릉도를 지칭하며, 송죽도라는 1섬만이 울릉도
곁에 있다고 하죠. 이에 고종황제는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우산도를
언급합니다.
于山島 鬱陵島 一云武陵 一云羽陵 二島在縣正東海中
三峯岌嶪撑空 南峯稍卑 風日淸明則 峯頭樹木 及山根沙渚 歷歷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說于山鬱陵
本一島 |
우산도와 울릉도; 무릉,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울진)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봉우리가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날씨가 맑으면 봉우리 꼭대기 나무와 산 아래 모래들을 역력히 볼 수 있다. 바람이
좋으면 이틀이면 가히 닿을 수 있다.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1년)의
울진현조(蔚珍縣條)
|
여지승람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2섬이라는 이도설(二島說)을
먼저 언급하고, 이외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래 1섬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을 주기했습니다. 고종황제가 이 기록을 언급한 이유는 이규원이
'우산도'를 울릉도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본래 우산도는
울릉도가 아님에도 이규원처럼 우산도를 울릉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죠. 여기서 이미 고종황제는 송도라는 명칭이
일본인이 울릉도를 일컫는 호칭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 이규원이 송죽도를 '송도(울릉도)'와 '죽도'로 알아 들은 것이 아닌가
해서 계속 이어서 송도(松島)와 죽도(竹島), 우산도 이 3섬을 합쳐서 울릉도라
한다 했습니다.
※而又稱松島竹島與芋山島爲三島統稱鬱陵島矣(그리고
또 혹은
송도(松島)·죽도(竹島)라고도 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鬱陵島)라고 하였다.)
송도, 죽도, 우산도 이 3섬을 통칭해서 울릉도라고 한 것은 이 3섬 중
1섬이 울릉도라는 것이다. 송도(松島)가 그 당시 일본인이 울릉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발언 중 송도는 울릉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1881년 일본인 7명이 울릉도에 들어가 불법 벌채를
하다 울릉도 수토관에 적발된 일(고종실록
1881년 5월 21일조 기사)을 계기로
조선 조정에서는 예조판서 심순택(沈舜澤)으로 하여금 일본 정부에 일본인의
울릉도 출입을 금하도록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게 하였다. 이때 예조판서
심순택과 일본 외무성 사이에 몇차례 서신이 오간 끝에 1882년
12월 16일 외무경 이노우에(井上)가 산죠(三條) 태정대신에
일본인의 울릉도(松島) 도항 금지를 청하였으며, 1883년 3월 1일 일본
산죠(三條) 태정대신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양국간의 울릉도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고종황제는 1881년
일본인의 울릉도 침탈을 계기로 통리 기무 아문(統理機務衙門)의
건의에 따라 다음 해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명해 울릉도에 파견, 울릉도 개척을 서둘렀다. 이때 고종황제는
한일 양국 간 중요한 영토논쟁에 접해 일본인이 울릉도를 '松島'라 호칭하였음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고종황제의 첫 발언과 이규원의 견해를
듣고 재발언한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첫 발언
|
두 번째 발언
|
|
울릉도 + 송죽도(=죽도)
+ 우산도
|
송도 + 죽도 +
우산도
|
이규원은 그의 울릉도 검찰 계본초에서
일본인이 울릉도를 송도(松島)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했으며, 울릉도
검찰을 끝마친 후, 고종황제에게 검찰 결과를 보고하면서도 송도라는 명칭을
울릉도로 발언합니다. 따라서 두 번째 고종황제의 발언에서의 송도는
울릉도, 죽도는 현재의 댓섬, 우산도는 독도입니다.
첫 발언과 차이가 없는 셈이죠. 첫
발언에서의
송죽도는 죽도인 것이며, 다음 발언에서의 송도는 울릉도를 지칭합니다.
따라서 고종황제의 견해는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끝마친 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松島 = 울릉도, 松竹島
= 竹島, 우산도)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지리적 인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Gerry-Bevers는 여전히 울릉도와
그 부속 섬에 대해 무지했던 이규원의 발언만을 부각시켜서 조선 후기
조선의 울릉도 주위에 대한 대표적인 지리적 인식은 "울릉도 + 송죽도(=죽도=우산도=송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종황제는 이규원과의 대화에서
이규원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죽도와 우산도를
다른 두 섬으로 인식한 조선후기 조선조정의 지리적 인식을 대표하는
고종황제의 발언과 위에 소개된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조선·대한제국의
지도를 연관시켜 보죠. 답은 명확하게 나옵니다. 때로 이규원과 같이
울릉도의 옛 명칭이 우산국(于山國)이었다는 문헌을 접한 사람 중에 우산도를
울릉도로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며, 죽도를 우산도로 착각한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즉, 실체는 우산도가 죽도와는 다른 섬인 '독도'였음에도,
울릉도 주위의 지리적 정보에 무지한 사람들에 의한 착각이 존재했다고
정리되는 것이죠.
고종실록·승정원일기 1882년
4월 7일조의 기록은 이 같은 현상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왠지 Gerry-Bevers는 이런
이규원의 오류를 조선후기 조선의 대표적인 울릉도의 부속 섬에 대한
인식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동해바다에 최단거리로 약 140km쯤 떨어져
있는 울릉도와 그 주위 섬에 대해서 상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이에 비해 고종황제는 울릉도 수토관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기에
이규원보다 상세한 울릉도의 실정을 파악하고 있었죠. Gerry-Bevers는
고종황제의 울릉도 주위의 지리적 인식의 정확성보다는 일생 단 한 번도
울릉도에 가보지 않은 이규원의 발언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우산도 = 죽도"라는 소설의 주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고종황제의 이 발언으로도 Gerry-Bevers의
"우산도 = 죽도"소설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고종황제는 우산도와
죽도(혹은 송죽도)를 분명하게 구분했습니다.
다음으로, Gerry-Bevers는 "삼수십리(三數十里)"의
해석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이 해석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30리"라 해석했다는
링크를 따라가 볼까요? "30리(里)쯤"이라고 해석했군요. "송죽도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와 떨어진 거리는 30리(里)쯤 됩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십이라는 단어는
"십의 두서너 배가 되는 수. 또는 그런 수의."란 뜻이 있습니다.
결국, 수십리는 20~40리(8~16km) 범위로 해석할
수 있죠. 네이버
국어사전의 설명
수십의 앞에 삼(三)자가 붙었으니,
삼수십리는 '30리 혹은 20~40리'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삼수십리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처럼 30리쯤(정도)이라고
해석해서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Gerry-Bevers는 한국식으로 큰 수가 앞에 나온다고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군요. 2,30리라고 하지 3,20리라고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해석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은 이규원이 언급한 '송죽도'가
현재의 '죽도'임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그의 왜곡 기질이 분명히 보이므로 다시 한번 그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
When Lee Gyu-won conducted his inspection of Ulleungdo
in 1882, he found two islands: Jukdo (竹島) and Dohang
(島項). His map of Ulleungdo showed that Jukdo was almost
certainly Ulleungdo's present-day neighboring island
of Jukdo (竹島), and Dohang was Ulleungdo's Gwaneumdo
(觀音島). He reported that he could find no islands
named "Songjukdo" or "Usando" and
concluded that Usando was just another name from Ulleungdo.
Neither King Kojong nor Lee Gyu-won showed any clue
that they knew Liancourt Rocks even existed.
1882년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을 수행할 때 그는 2개의 섬을 발견했습니다. 죽도와
도항입니다. 그의 울릉도지도에는 죽도가 현재 울릉도에
이웃한 섬인 죽도로, 도항은 울릉도의 관음도임이 거의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송죽도 혹은 우산도라고
명명된 섬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으며, 우산도는
울릉도에서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고종황제도
이규원도 그들이 Liancourt Rocks의 존재만이라도 알고
있었다는 어떤 실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전처럼 그가 이규원이 말하는 도항(島項)이 우산도라는 우스운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그러나, 그 아래 언급한 것처럼
이규원이 송죽도나 혹은 우산도라고 명명(命名)된 섬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기록을 찾았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울릉도 검찰 계본초 5월 13일자에는
우산도라는 섬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산도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기록은 아마도 이규원이 울릉도의 고지에
올라 울릉도 주위를 살펴보니 어떤 섬도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 날은 1년에 30일 정도밖에
되지 않죠. 이규원이 직접 육안으로 보지 못한 것뿐입니다. 이를
두고 Gerry-Bevers는 마치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에서 '우산도'라는 섬을
직접 찾아보았으나, 그런 섬이 발견되지 못한 것처럼 편집하고 있습니다.
이규원은 울릉도 검찰 계본초 5월 13일자에 '우산도'를 언급합니다.
Gerry-Bevers의 소망처럼 우산도라는 섬이 실재하지 않는 섬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렇게 우산도를 따로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이규원의 기록에는
우산도가 죽도와는 다른 섬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우산도는 죽도의 다른 이름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왜 우산도와 죽도, 송도, 송죽도가 모두 그려져
있는 한국의 지도가 없느냐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국의
지도가 없다는 이유로 이 4개의
이름 모두가 현재의 댓섬인 죽도의 별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소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든 근거중
하나가 17세기말 울릉도 영유권 분쟁에서 한국이 竹島를 조선어부들이
울릉도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도 Korean fishermen은 Japanese fishermen의 오타로
보입니다. 그 당시 죽도는 일본인이 울릉도를 지칭하던 명칭이었죠.
그의 설명인즉 죽도와 송도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던 조선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혼동을 일으켜 현재 댓섬인 Jukdo의 다른 이름으로 竹島와
松島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댓섬인 Jukdo는
현재까지도 그 명칭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또, 松島라는 이름으로
쓰였다는 사료도 지도도 존재하지 않죠.
울릉도 검찰 계본초 5월 13일자에는 분명 우산도라는 섬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송죽우산등도(松竹于山等島) 라고 하여 죽도와 우산도가 같은 섬이 아님을
밝혔죠. 같은 섬의 다른 이름 2개를 아무 설명 없이 나란히 늘어놓는
경우는 없습니다. 게다가 뒤에 等자를 붙였습니다. 어느 모라 보나 죽도와
우산도는 다른 섬입니다.
한국의 고지도에 우산도와 죽도 2섬이
모두 등장하지 않는 것은 독도인 우산도를 울릉도의 대표적인 부속 섬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죽도나 관음도는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울릉도에서 약
87km 떨어져 있는 우산도(독도)는 지도에 표시해 조선령임을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죽도1건'에서 죽도(울릉도)와 더불어 송도(독도,
우산도)까지 倭와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었기에 '우산도'만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지도에 표기했던 것이죠.
한 가지 더하면, 바로 일본 외무성 고위관리들이 조선을 정탐한 보고서인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중의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입니다.
"이 건은 松島는 竹島의 이웃한 섬으로서 松島의 건에 付해서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도 없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Gerry-Bevers는
이 문서를 활용해 "우산도=죽도=송도=송죽도"라는
설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죠. 보고서상 松島는 조선에서 댓섬을 이르는 '竹島(Jukdo)'를
부르던 명칭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때 이 보고서상 竹島는 원록 년간의
일을 거론하고 인삼 등이 산출된다는 뒷구절을 통해 울릉도의 일본식
명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제목에서의 竹島와
松島는 일본에서의
명칭이죠. 일본에서 죽도와 송도 두 섬이 등장하는 것은 울릉도와 독도입니다.
도대체 왜 이 보고서상 松島가 갑자기
죽도로 둔갑 되는지 그저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일본 역사에서
울릉도 북동쪽의 죽도(Jukdo, 댓섬)를 松島라 호칭한 적은 없습니다. 일본 지도상
동해에 등장하는 두 섬은 모두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죠. Gerry-Bevers는
일본의 고지도와 돗토리번 등의 문서자료를 좀 더 열심히 공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본
지도 속 독도 |

|
일본에서 竹島와 松島의 명칭상 혼동이
존재했지만, 그 두 섬의 이름이 현재 울릉도와 독도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죠. 여하튼 Gerry-Bevers는 갑자기 죽도를 송도로 탈바꿈
시키는 일본에서도 믿지 못할 궤변을 늘어 놓고 있군요.
진정으로 객관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