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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토론 참가자
wedgie(Steve
Barber)씨의 독도 홈페이지는 아래 주소입니다.
자 이미 이전
글에서 1877년 태정관문서에 대해서 ponta씨의
무지막지한 왜곡을 보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살펴보죠. 물론 기사에 대한
반박논리는 다른 외국인(Gerry-Bevers)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1899년 9월 23일자
황성신문(皇城新聞)기사 내용입니다.
ponta씨(Gerry-Bevers씨의 글 인용)의 이야기는 기사 첫머리에 울릉도의 소육도 중 크고 두드러진 섬으로서 우산도와 죽도를 소개하고 있고, 그 밑에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古에 牛形無角한 水獸가 有하니 名曰可之오(옛날에 소형상의 뿔이없는 물짐승이 있었으니 이름하기를 '可之'라고 하였다.)" 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 글로 우산도가 독도라면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당연히 부속된 섬도 포함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죠. 그러나 독도에는 이 당시에 강치가 있었으니, 우산도는 독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소로운 이야기죠.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해서 기사에서의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 우산도까지 포함을 해 함께 설명했다는 것인지? 위 신문기사 중 어디에 우산도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기록돼 있습니까? 분명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군요. 울릉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무리하게 부속섬인 우산도까지 포함한 것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억지 논리'라고 하죠.(^^) 이런 식의 논리라면, 이 기사 때문에 죽도(Chukdo)나 관음도까지 小六島에서 제외되게 됩니다. 울릉도에 대한 설명으로 향목(香木)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죽도나 관음도에는 향목(香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 Gerry Bevers의 이상한 논리를 그대로 여기에 적용시켜보죠. ※ 울릉도의 산물을 논한 부분을 보면 당시에 존재했던 서적을 참조해 열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기요람'이나 '울릉도사실변증설'에는 문헌비고를 인용해 울릉도의 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황성신문의 기사와 울릉도의 산물이 종류뿐 아니라 순서까지 거의 똑같이 열거되어 있으며, 可之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두 자료는 독도문서자료실에 있습니다. 이곳을 클릭 1. 울릉도에는 향목(香木)이 생산된다는 기록이 있다.─→ 2. 그러나, 죽도와 관음도에는 향목이 나지 않는다. ─→ 3. 그러므로 울릉도의 小六島中에는 죽도와 관음도가 포함될 수 없다. 죽도와 관음도에는 향목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산물에도 하나하나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되죠. 이 기사는 죽도가 우산도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틈만 나면 우산도는 죽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죽도와 우산도가 나란히 열거되어 있어 한국 역사속 '우산도'가 죽도가 아님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죠. 그럼, ponta씨 주장대로 우산도는 관음도일까요? 여기서 또 지겹겠지만,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9일 자를 보죠. 울릉도 선판구미에서 2섬을 목격합니다. 선판구미(船板邱尾)는 지도 상 선창(船艙 )입니다. 현재에도 선판구미라는 명칭으로도 불립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죠. 5월 13일 자를 보면, 松竹于山等島 僑寓諸人 皆以傍近小島 當之
관음도는 이미
'도항'이라는 이름으로 거론이 되었죠.
한일 고지도에 표기된 '우산도'를
보고도 그 섬이 '관음도'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1873년
소메자끼노부후사(染崎延房)
의
조선국세견전도
(자료사진;독도본부) 위의 비교적 정확히 우산도의 위치가 표기된 조선후기의 지도들 말고도 조선 초기 지도상 서쪽이나 북쪽, 또는 울릉도의 남쪽에 위치한 우산도가 현재의 관음도 위치에 있는 한국의 지도는 단 1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ponta씨는 우산도가 '관음도'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믿는군요. 그러면서, 한국 지도상 우산도가 현재와 같이 정확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독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 于山島는 竹島라고 했다가 '관음도'라고 시시때때로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마 위의 지도들을 제시하면, 또 于山島는 竹島로 순간이동을 하겠죠. 이런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진실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굉장히 이중적인 태도죠. 위의 신문기사를 대하는 것과 같은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면, 아마 독도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 오늘은 더
시간이 나지 않으니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위 글에 소개된 Gerry Bevers라는 사람의 사이트는 아직 방문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 역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적어도 신문기사 상 우산도가 어느 섬인지 입증을 한 후에 이런 망상을 했는지 꼭 방문해 확인하겠습니다.
위의 글에
제시된 Gerry-Bevers의 블로그를 방문했더니 마침
여기서 거론한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13일 자 일기의
구절이 등장하는군요.(^^) 그럼, 제 말대로 이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해당
글의 나머지 내용 역시 제가 이미 그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 대부분이네요. 여기서는 이 부분만
거론하겠습니다.
이 글만 가지고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Gerry Bevers는 아마도 1882년 4월 7일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이규원과 고종황제가 나눈 대화중의 松竹島를 도항(관음도)이나 죽도(Chukdo)에 접목시켜서 송죽도가 죽도(댓섬)임이 밝혀져 있으니, 于山島가 '관음도'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위에 소개한 황성신문의 기사 내용에서의 우산도는 관음도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아 "우산도 = 관음도" 라는 공식을 증명하고 싶은 거죠.
Gerry Bevers의 관련 글에서는 바로 이 구절 위에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13일자 일기를 거론합니다. 이
글을 보면, 그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는군요.
다른 해석은 한국 측 번역본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나 "松竹于山等島"을 "松島, 竹島, 于山島 등의 섬"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松竹島와 于山島 등의 섬"으로 해석을 해놓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껏 일본 측에서도 이런 왜곡해석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혹, 제가 놓쳤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새로운 해석입니다. 이 사람은 일본인보다 그 왜곡기질이 더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요. 즉, Gerry Bevers는 "송죽도 = 죽도(댓섬,Chukdo), 于山島 = 관음도(島項)"임을 주장하고 있는 거죠. 위에서 제가 한국과 일본의 지도를 제시해 놓았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꽤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여실히 보이네요. 이미 이전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지만, 위의 왜곡해석에 대응하고자 다시 한번 분명하게 언급을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이규원의 발언 중 "則千里可窺 而更無一拳石一撮土 則于山之稱鬱陵 卽如耽羅之稱濟州是白如乎" 이 발언이 나온 이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릉도의 고지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도인 우산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죠.(이미 이야기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다음 발언이죠.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라 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부분이죠. 이것은 섬의 명칭 상 오류를 거론한 부분입니다. '탐라(耽羅)'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탐라는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던 제주도의 옛 명칭입니다. 그럼, 울릉도의 옛 명칭은 뭐죠? '우산'입니다. 삼국사기에 울릉도와 그 주위섬을 통틀어 '于山國'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사에도 초기 기록에 울릉도를 '于山國'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역시 삼국시대~조선 초기까지 '耽羅國'이라 불렸죠. 于山國은 신라에 복속되었고,
'탐라국'은 백제에 복속되었다가
662년(문무왕
2) 2월에 탐라국주 좌평
도동음률(
徒
冬
音
律)이 와서
항복함으로써 신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우산국과 탐라국은 그 성격이 유사하죠. 이 '耽羅'라는 명칭이 조선 초기까지 계속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쓰이게 되었고, 이 글이 쓰여질 당시까지 제주도를 탐라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규원은 이 부분을 들어 울릉도의 옛명칭인 우산국을 현재까지도 울릉도를 호칭하는 경우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울릉도 검찰 이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의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다시 고종황제와 이규원의 대면장면을 살펴보죠.(이미 한 이야기를 자꾸 다시 해서 죄송합니다.^^Gerry Bevers의 왜곡을 깨려면 어쩔 수 없이 앵무새가 되어야......^^;;)
이번엔 고종실록의 기록
말고 같은 날(1882년, 4월
7일) '승정원 일기'의 기록을 제시합니다. 내용은 거의
동일합니다.
정리를 해보죠. 우선 고종황제의 발언입니다.
"울릉도
+ 松竹島 + 芋山島", "송도 + 죽도 + 우산도"의 3섬으로서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 3섬 모두를 울릉도라고 칭한다 하여
실지 송죽도가 竹島라고 불리고 있었던 사항을 오인한
것 외에는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규원의
경우를 살펴보죠. 말미에 그는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여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근방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고종황제보다 현저하게
떨어짐을 알 수 있죠. 고종황제는 이규원의 발언에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이전 관리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울릉도 상황을 전해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조선후기
울릉도와 울릉도 주위의 섬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사람의 대화만으로 그 전체상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이 대화는 울릉도 개척을 하기 전의 일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울릉도 검찰 이후, 울릉도 + 竹島 + 于山島 의 정확한 인식이 정착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이규원은 검찰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습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일반적인 인식은 고종황제의
발언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규원은 그의 5월 13일
자 일기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① 우선, 우산도를 울릉도의 명칭으로 오인했다는 것은 그의 발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죠. 고종황제의 견해가 옳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다음이 문제죠. 그는 울릉도인 우산도와 죽도인 松竹島 2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에 직접 가서 검찰을 한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죠.
② 그의 일기를 보면, 우선 현재 댓섬인
죽도(Chukdo)의 명칭이 竹島로 분명하게 나옵니다.
기록뿐 아니라 이규원 일행이 고종황제에 바친 '울릉도外圖※'에서도
竹島라는 명칭으로 등장합니다. 관음도인 島項 역시
기록과 지도에서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죠. 그럼, 이규원이 잘못 알고 있었던 우산도는 울릉도가 아니라는 사실과 고종황제의 발언내용 중 松竹島가 바로 竹島라는 사실을 울릉도 實査를 통해 확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③
여기서, 5월 13일 울릉도
검찰일기에서의
'松竹于山等島'에서 그가 말하는 松島는 어느
섬일까요? 그의 일기를 추적해 보죠. 5월 5일 자
일기를 보면 울릉도에 와서 벌목을 하고 있었던
왜인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이규원은 울릉도가 일본제국지도와 輿地全圖에서 모두
松島라 칭한다는 한 일본인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 기록 바로 다음에
松島라고 적힌 왜인의 표말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울릉도 검찰 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역시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이규원은 松竹島라는 명칭을 검찰 후, 어떤 섬의 이름으로 거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뿐 아니라, 松島가 울릉도의 일본식 이름임을 수차례 밝혔죠. 또한 4월 7일 조 고종황제와의 대화 끝에서 "혹은 松島 竹島라 칭하는 섬이 울릉도의 동쪽에 있는데 이것은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적어도 그는 울릉도에 도착해 자신이 알고 있었던 松島라는 이름이 일본인이 울릉도를 부르는 호칭임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그의 일기에서의 松島는 울릉도가 됩니다. 그의 보고서에서 竹島라는 명칭이 분명하게 거론이 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해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이런 것을 일러서 억지 해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일 그의 일기나 지도에서 松竹島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5월 13일 기록에서의 松竹于山等島의 기록을 Gerry Bevers의 해석처럼 송죽도와 우산도로 나누어 해석할 가능성이 남죠. 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이규원은 고종황제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발언이 틀렸음을 그 기록에서 밝히고 있어요. Gerry Bevers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밝힌 울릉도 검찰 전의 발언을 근거로 해서 실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의 이규원의 발언을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5월 13일은 울릉도에서의 발언입니다. 어디까지나 그가 울릉도에서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해석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Gerry Bevers는
이런 잘못된 해석에 근거해 이규원의 기록에
島項이라 이름한 관음도가 우산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죠. 전혀 실증이 없는 추정에 의한
억지 논리를 마치 진실인양 떠벌려
놓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기록을 살펴 보아도
현재의 관음도는 島項으로 기록했고, 죽도(Chukdo)는
竹島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최소한 Gerry Bever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울릉도외도나 기록에 島項이
'우산도'라고 한다는 간단한 주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아니면 최소한 한국의 다른 기록에라도
우산도가 도항이라는 간단한 기록이라도 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음도 자체에 대한 기록이
한국기록에서도 이것이 최초이고, 그 이후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가설이라면 완전 추측에 불과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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