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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내용이 실린 블로그


주요 토론 참가자

한국측 주장을 지지

Wedgie and JK

일본측 주장을 지지

Pacifist and Ponta

wedgie(Steve Barber)씨의 독도 홈페이지는 아래 주소입니다.
http://www.dokdo-takeshima.com/

 이번 글에서는 토론내용 중 무작위로 추출하겠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토론 내용이 실린 블로그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그때그때 토론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논평을 하고, 공백을 남겨 둡니다. 공백이 다 메워지면 다음 글로 넘어가겠습니다.
 

(생략)

As of 1899, the newpaper mention Ulleung.
1899년 경, 그 신문은 울릉도를 언급합니다.


In the sea east of Uljin is an island named Ulleung. Of its six, small neighboring islands, Usando and Jukdo are the most prominent (崔著者). The Daehanjiji says that Ulleungdo is the old Country of Usan. It has an area of 100 ri. Three peaks stand out (律兀). Its products are ….. In the past, “water animals” (水獸) that looked like “cows without horns” (牛形無角) lived there and were called “gaji” (可之).

(밑에 해석본을 실었습니다.)

First, notice that Usando and Jukdo were described as Ulleungdo’s most prominent islands, which was almost certainly a reference to present-day Gwaneumdo (觀音島) and Jukdo (竹島). Many Koreans may stubbornly claim that Usando was a reference to “Dokdo” (Liancourt Rocks), but the article seems to have poured cold water on that claim when it talked about “gaji.”

처음에 우산도와 죽도는 울릉도의 가장 두드러진 섬으로서 기술되었는데, 그것은 현재의 관음도와 죽도를 언급한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막무가내로 우산도가 독도(Liancourt Rocks)를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그러나 그 기사는 "가지"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그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습니다.

The “gaji” in the above article was a reference to sea lions. Notice that the article said that sea lions “used to live” on Ulleungdo, which meant they no longer lived there. That means that Usando and Jukdo, which the article described as neighboring islands of Ulleungdo, could not have been “Dokdo” (Liancourt Rocks) since there were still sea lions on “Dokdo” (Liancourt Rocks) at the time." Gerry/Occ

 위 기사의 가지는 강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사에서 울릉도에서 살았던 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것은  강치가 더는 그곳에(울릉도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사에서 울릉도의 인접한 섬들로서 묘사된 우산도와 죽도가 "독도"(Liancourt Rocks)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시기 "독도"(Liancourt Rocks)에는 강치가 아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생략)

Posted by: ponta | Monday, December 18, 2006 at 09:28 AM
 

 자 이미 이전 글에서 1877년 태정관문서에 대해서 ponta씨의 무지막지한 왜곡을 보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살펴보죠. 물론 기사에 대한 반박논리는 다른 외국인(Gerry-Bevers)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1899년 9월 23일자 황성신문(皇城新聞)기사 내용입니다.

울진지동해(鬱珍之東海)에 일도(一島)가 유(有)하니 왈(曰) 울릉(鬱陵)이라 기(其) 부속(附屬)한 소육도중(小六島中)에 최저자(崔著者)난 우산도(于山島) 죽도(竹島)이니 대한지지(大韓地誌)에 왈(曰) 울릉도(鬱陵島)난 고우산국(古于山國)이라 지방(地方)이 백리(百里)오 삼봉(三峰)이 율올(律兀)한되 소산(所産)은 시호(柴胡), 고본(藁本), 석남(石楠), 향목(香木), 규목(槻木), 노죽(蘆竹)이오 토성(土性)은 의맥(宜麥)하고, 古에 우형무각(牛形無角)한 수수(水獸)가 有하니 명왈가지(名曰可之)오 해도(海鳥)가 有하니, 곽조(霍鳥※1)ㅣ러라 도중(島中)에 인인(人烟)이 희소(希小)하야 국가(國家)에서 공세(公稅)를 면징(免徵)하고 매식년(每式年※2)에 부근지방관(附近地方官)으로 차사원(差使員)을 정송(定送)하야 도중정형(島中情形)도 사찰(査察)하고 향목(香木)과 노죽(蘆竹※3)을 재환(載還)하야 어공(御貢)할뿐이었는데 .....

울진의 동쪽 바다에 한 섬이 있으니 '울릉'이라고 한다. 그에 부속한 소육도중에 크고 두드러진 섬이 우산도와 죽도이니 대한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는 옛 우산국이라 하였다. 지방이 100리이며 3개의 봉오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산물은시호(柴胡), 고본(藁本), 석남(石楠), 향목(香木), 규목(槻木), 노죽(蘆竹)이오 토성(土性)은 다만 보리(맥곡류)가 날뿐이며, 옛날에 소 형상의 뿔이 없는 물짐승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可之라고 하며, 해조(바다 새)가 있으니, 곽조라고 하더라. 섬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국가에서 공세를 면제해 주고, 매식년마다 부근 지방관으로 차사(差使)를 정하여 보내, 섬 안의 정황도 사찰하고 향목과 노죽을 배에 실어 돌아와 임금께 바치게 할 뿐이었는데.....
(아래아는 'ㅏ'로 표기)

※1 霍鳥 ; 꽉새 혹은 깍새(슴새)로서, 그 울음소리가 "꽉, 꽉"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며, 대군집을 이루어 날아다닌다.  
※2 式年; 간지(干支)가 들어 있는 해로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3 蘆竹 ; '대나무'의 한 종류. 여유당전서에 노죽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거죽(巨竹)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第一集雜纂集第二十四卷○雅言覺非)  또, 경종실록(경종 3년 계묘)에는 노죽을 분죽(紛竹)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蘆竹은 대나무의 한 종류인 감죽(甘竹)·담죽(淡竹)·솜대인 분죽(紛竹)을 가리킨다.
경종실록에는 제주도의 분죽(紛竹)을 노죽(蘆竹)이라 이름했다고 기록해서 1899년 당시에는 노죽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분죽인 '솜대'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

 ponta씨(Gerry-Bevers씨의 글 인용)의 이야기는 기사 첫머리에 울릉도의 소육도 중 크고 두드러진 섬으로서 우산도와 죽도를 소개하고 있고, 그 밑에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古에 牛形無角한 水獸가 有하니 名曰可之오(옛날에 소형상의 뿔이없는 물짐승이 있었으니 이름하기를 '可之'라고 하였다.)" 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 글로 우산도가 독도라면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당연히 부속된 섬도 포함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죠. 그러나 독도에는 이 당시에 강치가 있었으니, 우산도는 독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소로운 이야기죠.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해서 기사에서의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 우산도까지 포함을 해 함께 설명했다는 것인지? 위 신문기사 중 어디에 우산도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기록돼 있습니까? 분명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군요.

 울릉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무리하게 부속섬인 우산도까지 포함한 것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억지 논리'라고 하죠.(^^)  이런 식의 논리라면, 이 기사 때문에 죽도(Chukdo)나 관음도까지 小六島에서 제외되게 됩니다. 울릉도에 대한 설명으로 향목(香木)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죽도나 관음도에는 향목(香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 Gerry Bevers의 이상한 논리를 그대로 여기에 적용시켜보죠.

울릉도의 산물을 논한 부분을 보면 당시에 존재했던 서적을 참조해 열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기요람'이나 '울릉도사실변증설'에는 문헌비고를 인용해 울릉도의 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황성신문의 기사와 울릉도의 산물이 종류뿐 아니라 순서까지 거의 똑같이 열거되어 있으며, 可之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두 자료는 독도문서자료실에 있습니다. 이곳을 클릭

1. 울릉도에는 향목(香木)이 생산된다는 기록이 있다.─→ 2. 그러나, 죽도와 관음도에는 향목이 나지 않는다. ─→ 3. 그러므로 울릉도의 小六島中에는 죽도와 관음도가 포함될 수 없다. 죽도와 관음도에는 향목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산물에도 하나하나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되죠.

 이 기사는 죽도가 우산도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틈만 나면 우산도는 죽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죽도와 우산도가 나란히 열거되어 있어 한국 역사속 '우산도'가 죽도가 아님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죠.

그럼, ponta씨 주장대로 우산도는 관음도일까요? 여기서 또 지겹겠지만,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9일 자를 보죠.

울릉도 선판구미에서 2섬을 목격합니다. 선판구미(船板邱尾)는 지도 상 선창(船艙 )입니다. 현재에도 선판구미라는 명칭으로도 불립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죠.
 
一曰竹島 一曰 島項 只有叢竹而已 하나는 竹島 (댓섬)라 하고 하나는 島項 (섬목, 관음도)이라 했는데, 단지 대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5월 13일 자를 보면, 松竹于山等島 僑寓諸人 皆以傍近小島 當之

 관음도는 이미 '도항'이라는 이름으로 거론이 되었죠.
이 기록에서 이규원은 왜
島項(관음도)을 빠트리고 죽도와 우산도를 거론했을까요? 황성신문기사와 마찬가지로 울릉도의 대표적인 섬이 죽도와 우산도라는 것입니다. 관음도는 그의 기록에 그 명칭을 따로 거론했습니다. 그럼, 울릉도의 대표적인 섬 중 하나인 우산도는 독도인 것입니다.

한일 고지도에 표기된 '우산도'를 보고도 그 섬이 '관음도'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1873년 소메자끼노부후사(染崎延房) 조선국세견전도 (자료사진;독도본부)

 위의 비교적 정확히 우산도의 위치가 표기된 조선후기의 지도들 말고도 조선 초기 지도상 서쪽이나 북쪽, 또는 울릉도의 남쪽에 위치한 우산도가 현재의 관음도 위치에 있는 한국의 지도는 단 1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ponta씨는 우산도가 '관음도'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믿는군요. 그러면서, 한국 지도상 우산도가 현재와 같이 정확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독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 于山島는 竹島라고 했다가 '관음도'라고 시시때때로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마 위의 지도들을 제시하면, 또 于山島는 竹島로 순간이동을 하겠죠.

이런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진실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굉장히 이중적인 태도죠. 위의 신문기사를 대하는 것과 같은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면, 아마 독도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 오늘은 더 시간이 나지 않으니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ponta씨, Gerry-Bevers씨 당신들을 왜곡의 大王으로 추대합니다. 부끄러운줄을 모르죠. 진실도 왜곡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군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 두 사람은 于山島가 죽도(Chukdo)라는 주장은 앞으로 하지 않겠군요.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위 글에 소개된 Gerry Bevers라는 사람의 사이트는 아직 방문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 역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적어도 신문기사 상 우산도가 어느 섬인지 입증을 한 후에 이런 망상을 했는지 꼭 방문해 확인하겠습니다.


 위의 글에 제시된 Gerry-Bevers의 블로그를 방문했더니 마침 여기서 거론한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13일 자 일기의 구절이 등장하는군요.(^^) 그럼, 제 말대로 이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해당 글의 나머지 내용 역시 제가 이미 그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 대부분이네요. 여기서는 이 부분만 거론하겠습니다.
 

Notice that the people Lee found on Ulleungdo had heard that Songjukdo and Usando were neighboring islands of Ulleungdo, but they did not know where they were. That suggests that they were most likely just alternative names for either Jukdo or Dohang. As for Songjukdo, both King Gojong and Lee Gyu-won had already said that “Jukdo” was another name used to refer to it. In 1882, it seems that “Jukdo” and “Dohang” were the current popular names for Ulleungdo’s two neighboring islands.

이규원 일행이 울릉도에 인접해 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던 '松竹島와 于山島'라고 들었던 울릉도에서 발견한 것(섬)에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그것들이(송죽도와 우산도가) 죽도나 도항 두 섬 중 하나의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송죽도에 관해서는 고종과 이규원 두 사람 모두 1882년에 죽도에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죽도와 도항은 울릉도의 2개의 이웃한 섬들의 통용되는 항간의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만 가지고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Gerry Bevers는 아마도 1882년 4월 7일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이규원과 고종황제가 나눈 대화중의 松竹島를 도항(관음도)이나 죽도(Chukdo)에 접목시켜서 송죽도가 죽도(댓섬)임이 밝혀져 있으니, 于山島가 '관음도'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위에 소개한 황성신문의 기사 내용에서의 우산도는 관음도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아 "우산도 = 관음도" 라는 공식을 증명하고 싶은 거죠.

Gerry Bevers의 관련 글에서는 바로 이 구절 위에 이규원의 검찰일기 5월 13일자 일기를 거론합니다. 이 글을 보면, 그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는군요.

松竹于山等 島 僑寓諸人 皆以傍近小島 當之 然旣無圖籍之可據 又無鄕導之指的 晴明之日 登高遠眺 則千里可窺 而更無一拳石一撮土 則于山之稱鬱陵 卽如耽羅之稱濟州是白如乎

松竹島, 于山島 은 (우리나라 백성으로) 그곳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당연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거할만한 지도나 문적도 없고, 또 가르쳐 줄 안내자도 없어, 청명한 날에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살펴본즉  일천 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또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었으니 이는 곧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해석은 한국 측 번역본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나 "松竹于山等島"을 "松島, 竹島, 于山島 등의 섬"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松竹島와 于山島 등의 섬"으로 해석을 해놓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껏 일본 측에서도 이런 왜곡해석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혹, 제가 놓쳤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새로운 해석입니다. 이 사람은 일본인보다 그 왜곡기질이 더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요. 즉, Gerry Bevers는 "송죽도 = 죽도(댓섬,Chukdo), 于山島 = 관음도(島項)"임을 주장하고 있는 거죠. 위에서 제가 한국과 일본의 지도를 제시해 놓았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꽤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여실히 보이네요.

이미 이전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지만, 위의 왜곡해석에 대응하고자 다시 한번 분명하게 언급을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이규원의 발언 중 "則千里可窺 而更無一拳石一撮土 則于山之稱鬱陵 卽如耽羅之稱濟州是白如乎" 이 발언이 나온 이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릉도의 고지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도인 우산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죠.(이미 이야기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다음 발언이죠.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이 탐라를 제주도라 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부분이죠.

 이것은 섬의 명칭 상 오류를 거론한 부분입니다. '탐라(耽羅)'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탐라는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던 제주도의 옛 명칭입니다. 그럼, 울릉도의 옛 명칭은 뭐죠? '우산'입니다. 삼국사기에 울릉도와 그 주위섬을 통틀어 '于山國'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사에도 초기 기록에 울릉도를 '于山國'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역시  삼국시대~조선 초기까지 '耽羅國'이라 불렸죠.

于山國은 신라에 복속되었고, '탐라국'은 백제에 복속되었다가 662년(문무왕 2) 2월에 탐라국주 좌평 도동음률()이 와서 항복함으로써 신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우산국과 탐라국은 그 성격이 유사하죠.

이 '耽羅'라는 명칭이 조선 초기까지 계속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쓰이게 되었고, 이 글이 쓰여질 당시까지 제주도를 탐라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규원은 이 부분을 들어 울릉도의 옛명칭인 우산국을 현재까지도 울릉도를 호칭하는 경우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울릉도 검찰 이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의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다시 고종황제와 이규원의 대면장면을 살펴보죠.(이미 한 이야기를 자꾸 다시 해서 죄송합니다.^^Gerry Bevers의 왜곡을 깨려면 어쩔 수 없이 앵무새가 되어야......^^;;)

이번엔 고종실록의 기록 말고 같은 날(1882년, 4월 7일) '승정원 일기'의 기록을 제시합니다. 내용은 거의 동일합니다.
 

上曰 鬱陵島 近有他國人物之無常往來 任自占便之弊矣. 且松竹島 芋山島 在於鬱陵島之榜 而其相距遠近何如 亦有何物與否 未能詳知. 今番爾行 特爲擇差者 各別檢察 且將設邑爲計 必以圖形與別單 詳細錄達也. 奎遠曰 謹當갈蹶奉行矣. 芋山島 卽鬱陵島 而芋山 古之國都名也. 松竹島 卽一小島 而與鬱陵島相距 爲三數十里 其所産 卽 檀香與簡竹云矣. 上曰 或稱芋山島 或稱松竹島 皆輿地勝覽所製也. 而又稱松竹島 與芋山島爲三島 通稱鬱陵島矣. 其形便 一體檢察. 鬱陵島 本以三陟營將 越松萬戶 輪回搜討者 而擧皆未免疎忽 只以外面探來 故致有此弊. 爾則必詳細察得也. 奎遠曰 謹當深入檢察矣. 或稱 松島竹島 在於鬱陵島之東 而此非松竹島之外 別有松島竹島也.

왕께서 말하기를, 울릉도에 근래 타국인이 무상 왕래하고 있어 스스로 점거함에 맡기는 폐단이 있다. 또한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가 울릉도의 근방에 있다는데 그 상호 거리의 원근이 어떠한가, 또한 어떤 물산이 있는가의 여부를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너를 특별히 뽑아내 보내는 것이니 각별히 검찰하라. 또한 장차 읍(邑)을 설치할 계획이니 반드시 도형(圖形)과 별단(別單)으로써 상세히 기록하여 보고하여라.

이규원이 아뢰되, 삼가 마땅히 힘껏 봉행(奉行)하겠습니다. 우산도(芋山島)는 곧 울릉도(鬱陵島)인데 우산(芋山)은 옛날의 국도(國都)의 이름이라 합니다. 송죽도(松竹島)는 곧 하나의 소도( 小島)인데 울릉도와의 상호 거리가 30여 리가 된다 합니다. 그 나는 바는 단향(檀香)과 간죽(簡竹, 담배설대)이라고 합니다.

왕께서 가로되, 혹은 칭하기를 우산도(芋山島)라하고 혹은 칭하기를 송죽도(松竹島)라 하는 것은 모두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송죽도(松竹島)라고 칭하는데 우산도(芋山島)와 더불어 3섬이 되고, 모두 '울릉도'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그 형편을 모두 검찰하라. 울릉도는 본래 삼척영장(三陟營將) 월송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며 수토(搜討)하는 것인데 그 거행에 모두 소홀함을 면치 못하고 단지 외면(外面)을 검찰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폐단이 있기에 이른 것이다. 너라면 반드시 상세하게 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원이 아뢰되, 삼가 마땅히 깊이 들어가 검찰하겠습니다. 혹은 松島 竹島라 칭하는 섬이 울릉도의 동쪽에 있는데 이것은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

고종실록에는 松島竹島 라 기록되었는데, 고종황제가 송죽도는 우산도와 더불어 3섬이고 이를 통칭해 울릉도라고 한다는 발언을 본다면, 여기서의 송죽도는 고종실록의 기록과 같이 송도와 죽도로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정리를 해보죠.

우선 고종황제의 발언입니다.

"울릉도 + 松竹島 + 芋山島", "송도 + 죽도 + 우산도"의 3섬으로서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 3섬 모두를 울릉도라고 칭한다 하여 실지 송죽도가 竹島라고 불리고 있었던 사항을 오인한 것 외에는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규원의 경우를 살펴보죠.
芋山島 + 松竹島  여기서 우산도가 울릉도, 송죽도가 三數十里 떨어진 섬이라고 했습니다. 三數十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울릉도 동북쪽의 죽도(Chukdo)가 될 수도 있고, 독도일 가능성도 남습니다. 三數十里는 30여 리를 말합니다. 이건 보통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거리 표현양식입니다. 이 기록을 3~10里로 해석하는 것은 한국의 거리관념을 전혀 모르는 재고할 가치도 없는 발언이죠. 1里를 한국식으로 현재의 거리로 환산하면, 12Km 이상이 됩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가 일제강점기의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일본식으로 환산하면 120KM이상이 되죠. 어떤 방식으로도 현재의 실제거리에 맞추어 보면 해당하는 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기록이라고 해서 1里를 일본식 거리로 환산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한국의 황제와 신하와의 대화내용이기 때문이죠. 이규원이 말하는 三數十里 떨어져 있다는 송죽도는 댓섬인 죽도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미에 그는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여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근방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고종황제보다 현저하게 떨어짐을 알 수 있죠. 고종황제는 이규원의 발언에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이전 관리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울릉도 상황을 전해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규원의 발언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네요.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 ---> 이 발언은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발언입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의 일본식 명칭이 옛부터 竹島와 松島였기 때문이죠. 어디선가 일본의 서적을 보았거나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이규원의 발언은 서적을 통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써, 전혀 신빙성이 없으며, 특히 조선조정의 울릉도 주위의 지리적 인식과 연결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조선후기 울릉도와 울릉도 주위의 섬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사람의 대화만으로 그 전체상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이 대화는 울릉도 개척을 하기 전의 일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울릉도 검찰 이후, 울릉도 + 竹島 + 于山島 의 정확한 인식이 정착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이규원은 검찰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습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일반적인 인식은 고종황제의 발언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고종황제)
a. 울릉도 + 松竹島(竹島, Chukdo) + 于山島
b. 松島 + 竹島 +
芋山島

(이규원)
c.
于山島 (울릉도)+ 松竹島(竹島, Chukdo)
d. 울릉도 + 松島 + 竹島

 이규원은 그의 5월 13일 자 일기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오류가 있었을까요?

우선, 우산도를 울릉도의 명칭으로 오인했다는 것은 그의 발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죠. 고종황제의 견해가 옳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다음이 문제죠. 그는 울릉도인 우산도와 죽도인 松竹島 2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에 직접 가서 검찰을 한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죠.

그의 일기를 보면, 우선 현재 댓섬인 죽도(Chukdo)의 명칭이 竹島로 분명하게 나옵니다. 기록뿐 아니라 이규원 일행이 고종황제에 바친 '울릉도外圖'에서도 竹島라는 명칭으로 등장합니다. 관음도인 島項 역시 기록과 지도에서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죠.
이 지도가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후 조선조정에 보고되었으므로 보통 이규원으로 그 작자를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수행원중 한 사람이 그린 지도입니다.

그럼, 이규원이 잘못 알고 있었던 우산도는 울릉도가 아니라는 사실과 고종황제의 발언내용 중 松竹島가 바로 竹島라는 사실을 울릉도 實査를 통해 확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5월 13일 울릉도 검찰일기에서의 '松竹于山等島'에서 그가 말하는 松島는 어느 섬일까요? 그의 일기를 추적해 보죠. 5월 5일 자 일기를 보면 울릉도에 와서 벌목을 하고 있었던 왜인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이규원은 울릉도가 일본제국지도와 輿地全圖에서 모두 松島라 칭한다는 한 일본인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此島名鬱陵 而高麗受之於新羅 我朝受之於高麗 係是幾千年傳來疆土 而爾等 稱曰爾國松島者 亦有何據乎 況幾百年以來 自我朝廷送官弁 間年搜討 爾等不知我國法禁 而有是犯

"이 섬의 이름은 울릉으로서 고려가 신라로부터 받았고 우리 왕조는 고려에서 받아 천년을 전해 내려온 강토인데, 너희들이 너희 나라 松島라고 칭하는 곳은 또한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물며 기백년 이래로 우리 조정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1년 간격으로 수토(搜討)하여 왔는데 너희가 우리나라 법금을 모르고 이리 함부로 나무를 베고 있느냐?”

이 기록 바로 다음에 松島라고 적힌 왜인의 표말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울릉도 검찰 후, 고종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역시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承政院日記 高宗 19年(1882년) 6月 初5日條중에서

奎遠曰 彼狡譎之類 至於立標木 書以松島 松島云者 自前相詰者也 不可無一次公翰於花房義質處 亦不可無致書於日本外務省矣.

李奎遠이 아뢰되, 저 교활한 무리들이 표목을 세우고 ‘松島’라고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松島’ 운운한 것은 이전부터 서로 힐문한 바가 있었습니다. (일본공사) 하나부사요시타다(花房義質)에게 일차 공한을 보내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일본 외무성에도 문서를 보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규원은 松竹島라는 명칭을 검찰 후, 어떤 섬의 이름으로 거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뿐 아니라, 松島가 울릉도의 일본식 이름임을 수차례 밝혔죠. 또한 4월 7일 조 고종황제와의 대화 끝에서  "혹은 松島 竹島라 칭하는 섬이 울릉도의 동쪽에 있는데 이것은 松竹島가 아니라 그 밖에 별도로 松島 竹島가 있다고 합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적어도 그는 울릉도에 도착해 자신이 알고 있었던 松島라는 이름이 일본인이 울릉도를 부르는 호칭임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그의 일기에서의 松島는 울릉도가 됩니다. 그의 보고서에서 竹島라는 명칭이 분명하게 거론이 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해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이런 것을 일러서 억지 해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일 그의 일기나 지도에서 松竹島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5월 13일 기록에서의 松竹于山等島의 기록을 Gerry Bevers의 해석처럼 송죽도와 우산도로 나누어 해석할 가능성이 남죠. 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이규원은 고종황제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발언이 틀렸음을 그 기록에서 밝히고 있어요. Gerry Bevers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밝힌 울릉도 검찰 전의 발언을 근거로 해서 실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의 이규원의 발언을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5월 13일은 울릉도에서의 발언입니다. 어디까지나 그가 울릉도에서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해석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Gerry Bevers는 이런 잘못된 해석에 근거해 이규원의 기록에 島項이라 이름한 관음도가 우산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죠. 전혀 실증이 없는 추정에 의한 억지 논리를 마치 진실인양 떠벌려 놓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기록을 살펴 보아도 현재의 관음도는 島項으로 기록했고, 죽도(Chukdo)는 竹島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최소한 Gerry Bever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울릉도외도나 기록에 島項이 '우산도'라고 한다는 간단한 주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아니면 최소한 한국의 다른 기록에라도 우산도가 도항이라는 간단한 기록이라도 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음도 자체에 대한 기록이 한국기록에서도 이것이 최초이고, 그 이후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가설이라면 완전 추측에 불과한 거죠.
Gerry Bevers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관음도가 于山島라고 불린 자료를 오늘부터 열심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Fighting!)
Gerry Bevers는 황성신문의 기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보나, 이규원의 검찰일기를 잘못 해석하는 것으로 보나, 역사를 들먹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네요. (^^)실은 독도에 대해서 일본 측 왜곡주장을 따르는 사람이 한국인의 시각으로 이쁘게 보일 리는 없죠. 그래서 조금 심한 말들을 했습니다. Gerry Bevers씨가  독도에 대한 애정에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일의 독도연구가들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보충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껏 일본 측에서 황성신문이나 이규원의 검찰일기를 제대로 반박한 적은 없군요. 그중에 가장 그럴 듯하게 왜곡한 글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올린 글에서 더 논평하고 싶은 것이 있으나, 오늘은 그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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